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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무릎팍 도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무릎팍 도사>는 상업적 방송의 한계를 지니고 있어 재미와 오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게 존재하고, 연예인들의 경우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거나 새 영화와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기에 출연하여 홍보성이 있다는 의혹까지 종종 받기 때문이다.

<무릎팍 도사>는 엄연하게 예능프로그램으로 이런 엔터테이먼트적인 요소가 분명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진솔한 모습으로 소통해주기를 원한다.이율배반적이기는 하지만 가끔씩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출연자들이 진솔한 모습으로 시청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여 그동안의 오해가 풀려서 호감으로 변하거나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1박2일>,<무한도전>이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1박2일 집으로>편처럼 감동까지 주기를 항상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청자들의 바람 때문에 오히려 <무릎팍 도사>은 안철수,김중만,신지애,허구연 같은 비 연예인이 더 적합할거 같다.<무릎팍 도사 안철수>편은 지난주에 방송되었던 조성모편 보다 시청율이 높다고 하니 <무릎팍 도사> 제작진에서 반드시 참고로 해야 할 거 같다.

<무릎팍 도사 안철수편>은 4월 29일에 녹화가 되었다.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청소년과 부모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이 되도록 제작을 했다고 하는데,6월 중순에 방송이 되었다.뭔가 방송국에 사정이 있었던 거 같다.

<무릎팍 도사 안철수편>은 크게 3가지 부분의 주요 이야기로 이루어 졌다.의사를 포기하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컴퓨터 전문주치의 길에 들어선 과정, 벤처기업 CEO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간 것, 그 후 교수로 변신해서 사회에 기업의 정신을 불어 넣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이야기다.

1962년 부산 출생인 안철수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기초의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학석사 학위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석사 논문은 <동방결절내에서의 흥분 전도에 미치는 Adrenaline, Acetylcholine, Ca++ 및 K+의 영향(1987)> 이고, 박사 논문은 <토끼 단일 심방근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2+ 전류의 조절기전(1991)> 이다.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 자신의 컴퓨터가 플로피 디스켓에 의하여 감염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백신을 개발하여 PC통신망에 올린 이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와 의예과 학장까지 지냈으나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1995년 백신을 만드는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설립하여 컴퓨터 전문주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그 당시 그가 개발한 V3는 한국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반드시 필수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 하루 4~5시간의 수면 밖에 못 취하면서 '백신2'(V2)와 '백신2+'(V2+)를 개발했고,박사과정을 마치고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 전까지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작업을 하다 백신3(V3) 최초버전을 만들어냈지만 일에 집중하다보니 아내에게 군대 간다는 말도 못하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연구소 설립 후 그는 곧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M.S.E.(공학석사)를 받았다.미국 유학과 경영을 동시에 해야 했고 IMF 때 과로와 간염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1997년 실리콘밸리에 머물며 미국에서 유학 하던 중 현재의 경쟁회사인 네트워크어소시에츠(당시 맥아피사)로부터 최소 1,000만 달러에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한국에 백신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편안한 삶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돈 보다 가치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안철수연구소를 팔면 갑부가 되지만 국민들은 앞으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백신프로그램을 외국기업에 사야하는 손해를 거부 한 것이다.

회사 설립 10주년이 되는 2005년 그는 CEO 자리에서 물러 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의 경영자 MBA 2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2008년 4월 30일 귀국하였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와 안랩 최고학습책임자(CLO: Chief Learning Officer) 활동 할 예정이다.

베스트 작가이기도 한 안철수 교수는 저서로는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1995)>,〈바이러스 예방과 치료(1997)>,〈영혼이 있는 승부(2001)>,〈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2004)> 등이 있다.

1988년 세계적인 기업 맥아피보다 앞서 안티바이러스 솔루션 V3를 개발했고,설립 이래 꾸준한 매출 성장을 보여 99년 보안 업계 최초로 100억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올려 이후 국내 보안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안철수 연구소의 안철수 교수는 영혼을 불어 넣는 정신으로 한국 국민에게 성공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로 기여를 많이 하고 있는 안철수 교수를 시청자들이 존경하며 보석 같은 분이라는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긍정적으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사실 <무릎팍 도사 안철수편>은 다른 출연자와 이야기 구성이 비슷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평과 감동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치열했던 그의 삶에서 우려 나오는 진실 때문인 거 같다.한국에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서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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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 조성모> 편이 방송이 되었는데 병역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여 조성모편이 홍보성이 짙었다거나 무릎팍도사에 출연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건 잘못되거나 너무 심한 표현인거 같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연예인 중에서 가장 건강하게 보였던 조성모가 공익 요원으로 병역을 끝마친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해명이나 이야기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조성모가 병역문제에 대해서 하나도 언급이 없었던 점을 지적하는 것도 이해한다.조성모는 정상적으로 공익 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혹을 품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안티가 존재하니까 말이다.조성모가 이런 오해를 풀고 시청자들과 소통을 바라는 건 타당하다.

최근 3개월 동안 방송되었던 <무릎팍 도사>에 비하여 조성모편은 홍보성이 비교적 없는 방송인거 같다.물론 7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복귀하는 시점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기 때문에 홍보하러 나온 것으로 조성모는 쉽게 의심을 받을 수 있다.하지만 다른 출연자들에 비하여 현란한 수식어구도 거의 없었고 그의 노래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도 거의 없었다.

    <최근의 3개월 동안의 무릎팍 도사 - 직접 읽어 보시고 조성모편과 비교해 보세요>

  1. 09:47:40 무릎팍도사,달라진 음악으로 관심받고 싶은 조성모
  2. 2009/05/21 무릎팍도사 허구연 야구 인생의 3가지 이야기 (4)
  3. 2009/05/16 허구연 1박2일 발언을 정확하게 이해하십니까? (55)
  4. 2009/05/07 믿음이 가는 진정한 배우로 거듭난 이준기 <무릎팍도사2편>
  5. 2009/04/30 <왕의남자>로 배우의 꿈을 이룬 이준기 무릎팍도사 (2)
  6. 2009/04/16 김래원의 5가지 비밀은? 무릎팍 도사 김래원 (4)
  7. 2009/04/09 인간미가 묻어나는 포커페이스 신지애 무릎팍도사 (2)
  8. 2009/04/02 완벽한 가창력 진정한 가수 이선희 (6)
  9. 2009/03/27 장서희 막장드라마 책임론은 편협하다
  10. 2009/03/26 <무릎팍 도사 장서희 편> 귀여운 깍장이 장서희 (3)
  11. 2009/03/19 무릎팍 도사 문성근의 인생,부친,에피소드 이야기 (8)
  12. 2009/03/12 백지영 노래의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1)

조성모는 가수가 되기까지 힘든 과정, 어려웠던 집안 사정, 거만하다는 오해 등을 풀어주면서 다른 출연자들과 비슷한 이야기로 <무릎팍 도사>를 채워나갔다.

최근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이준기,허구연,김래원,신지애,이선희,장서희,문성근 등과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조성모는 <무릎팍도사> 녹화를 하면서 병역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삭제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만약 조성모가 실제 병역문제에 대해서 녹화하는 중에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단순하게 이 문제를 회피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왜냐하면 <무릎팍도사>는 조성모 마음대로 편집하여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성모의 <무릎팍도사> 출연 자격 여부를 논하는 거 자체가 경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런식으로 조성모편이 홍보성이 짙어서 <무릎팍도사>에 출연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최근에 출연한 모든 출연자가 똑같이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병역문제와 <무릎팍도사>의 홍보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무릎팍도사>는 최근에 계속하여 거의 비슷한 구성과 이야기로 방송이 되었다.병역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조성모만 홍보성이 짙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조성모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오직 다이어트뿐이라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조성모는 자신이 외모와 패션만 변하게 아니라 음악도 변했는데 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달라진 음악 이야기도 하고 싶은 심리가 그의 마음속에 내제되어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서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어서 가수 조성모를 좀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불만스러운 방송이 될 수 있었다.

다른 출연자들은 히트 쳤던 노래와 드라마,영화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성모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부족했다.

이런 <무릎팍도사 조성모>편에 홍보성이 짙다는 주장은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을 넘어서 안티로 의심이 될 정도다.조성모가 뭘 하던지 밉게 보이고 싫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필자는 분명하게 밝히지만 조성모의 팬은 아니다.다만 최근 몇개월동안 <무릎팍도사>를 정말 세심하게 시청을 해본 결과를 객관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성모가 어떤 블로그의 글에 대해서 중지 요청을 하고 법적인 절차를 준비했다는 점은 필자 역시 블로그로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블로그들 모두가 합심을 하여 슬기롭게 대처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그렇다고 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를 가진 한 연예인에 대해서 불합리한 기준으로 집단적으로 공격이나 린치를 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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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발표된 조성모 정규 7집 앨범 <Second Half>가 발매 당일에만 6만 5천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서태지와 슈퍼주니어를 제치고 실시간 차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공백기를 무색하게 했다.

조성모는 살을 20kg이나 감량하고 다시 컴백해 주위에서 다이어트 어떻게 했냐는 데만 관심이 있어서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릎팍도사>에 나왔다고 한다.

조성모는 한 때 학급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어느날 우연히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조성모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4년 동안 기획사를 4번이나 옮겨 다니며 친구나 지인의 집에서 빈대 생활을 했다.

이휘재의 응원에 힘을 받아 첫 앨범을 내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IMF의 영향으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 차압이 들어와서 큰 행사 작은 행사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만 했다.1집을 내고 번 돈을 집에 가지고 갔지만 이자 갚기에도 부족하였다.당시 조성모는 “왜 당신들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부모님에게 말을 하여 큰 상처를 드린 게 아직도 후회가 된다고 한다.

조성모는 3집 까지 활동을 했을 때 집의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그 당시 가족들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 며칠 밤을 새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다.하지만 빚을 청산한 4집 이후부터 무리한 스케줄에 일에 지쳐 ‘배부른 돼지’ 처럼 일을 적당하게 하다 보니 섭외 순위에도 밀리고 팬들도 외면을 한거 같다며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돌아봤다.

또한 자신을 데뷔시켜주고 성공시킨 음반 제작자 김광수 대표와 결별한 것은 음악적 욕심 때문이었다는 조성모는 휴식 시간은 적지만 모든 기획을 알아서 다 해주던 과거 시절이 오히려 더 편하고 행복한 면도 있다면서 신인들은 대형기획사에서 시작하는 게 더 낫다고 조언을 했다.

조성모의 7집의 타이틀곡은 하정호 작사 작곡의 <행복했었다>로 담백한 복고풍의 발라드다.이 노래를 들어보니 조성모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왜 자신에 대한 관심이 다이어트 뿐이냐고 말했던 이유가 이해가 된다.

98년도 <to heaven>이라는 뮤직비디오는 한국 ‘드라마 타이즈 뮤직비디오’의 효시였다.하지만 이번 뮤직비디오는 이런 드라마 타이즈 스타일을 완전 탈피했다.김하늘과 조성모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뮤직비디오는 스토리에 치중하여 음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던 점을 극복했다.2배속 고속촬영법을 도입하여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세밀한 감정 표현을 도와주고 있다.

조성모는 이번 뮤직비디오의 편집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음악에 대한 순수한 욕심 때문에 앨범이 나올 때 재킷을 본 적도 없고, 뮤직비디오 회의에 들어가 본적도 없어서 불만이 있었던 <to heaven> 시절의 조성모와는 완전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 엘범의 제목은 <Second Half>로 후반전이라는 의미다.조성모는 가수로서 새로운 시작인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들고 있다.<행복했었다>는 과거의 화려했던 기교를 벗고 가슴으로 노래를 하는 성숙한 가수로 변한 조성모를 발견하게 된다.

조성모는 다이어트를 하여 패션과 외모가 달라진 것뿐만 아니라 음악도 달라진것이다.조성모는 가수인 자신에게 달라진 음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지 않고 오직 외모에만 시선이 집중되는 점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무릎팍도사>에서도 조성모의 이런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달라진 음악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더라면 좋았을 거 같다.

새로운 음악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는 조성모의 노래가 대중들의 가슴속 깊이 따뜻하고 큰 울림을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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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최연소, 청보핀토스 감독 시절 첫 승을 거두고 목 놓아 울었다던 허구연 해설위원은 야구와 함께 살아온 인생이었다.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야구와의 끈질긴 인연은 계속 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국 야구역사와 함께 성장해온 허구연 해설위원의 야구 중심의 인생이야기는 한편의 대 서사극를 보는것 처럼 다이나믹하고 야구에 얽힌 사연이 너무나 많았다.

<무릎팍 도사 허구연편 2회>에서는 故 송인득 캐스터에 대한 회상,이승엽 선수의 인간성,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방송사고 등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허구연 해설위원의 야구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명콤비 故 송인득 캐스터에 대한 회상

허구연 해설위원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25년간 함께 호흡을 맞춘 故 송인득 캐스터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故 송인득 캐스터를 최고의 파트너로 꼽으면서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허구연 해설위원은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던 故 송인득 캐스터에게 술과 담배를 멀리 하라고 엄청 싫은 소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자신 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 건강이 나빠져서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허구연 해설위원은 故 송인득 캐스터의 임종을 지켜보며 야구 중계를 하러 가자고 말했다고 한다.지금도 방안에 故 송인득 캐스터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바보 같은 친구야’ 라면서 속으로 한탄한다고 한다.

故 송인득 캐스터는 1982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주로 스포츠 중계와 스포츠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으며 20년 넘게 기록 노트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한국아나운서연합회 회장까지 지내며 허구연 해설위원과 환상적인 호흡을 맞춰 명 캐스트로 유명해지면서 MBC 야구 중계를 이끌어 나갔다.이런 도중 2007년 5월 23일 간경화에 따른 위 정맥류 출혈로 향년 48세 나이로 별세했다.

이승엽 선수에게서 최고의 인간성을 보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을 이긴 후에 기쁨에 벅차 흥분한 교민들은 이승엽 선수에게 싸인 하나 받는 게 꿈이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이런 교민들의 바람을 거절하지 않고 2박스가 넘는 분량의 사인을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다 해줄 정도로 이승엽의 인간성이 최고라고 했다.

강호동은 이승엽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처럼 화면의 정면 쪽을 주시하며 이승엽의 사인은 괜찮고 언제 한번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달라고 요청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이에 이승엽을 무릎팍도사에 출연시키는 방법은 강호동 대신 김제동을 무릎팍도사에 앉혀두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2009년 가장 주목되는 선수로 두산 베어스의 김현수를 꼽았다.김현수는 이제 21살이다.이 나이에 야구를 잘하게 되면 겉멋이 들거나 옆길로 샐 수 도 있는데 김현수는 정말 그렇지 않다면서 대성할 선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강호동은 양준혁 선수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양준혁이 1년 반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홈런 신기록 세러머니를 하기로 약속한 것을 회상했다.

양준혁은 2007년 11월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장종훈의 최다 홈런 신기록 340개를 깨는 순간 마이클 잭슨의 탭댄스 문워크로 홈을 밟겠다고 했다.

양준혁은 5월 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LG 전에서 프로통상 341호 홈런을 터트리며 최다 홈런 신기록을 수립하며 홈런왕에 등극했다.프로야구의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 지는 순간이었다.

341호 홈런을 친 양준혁은 3루 베이스를 밟고 홈으로 들어오면서 갑자기 뒤돌아서 가볍게 뛰면서 홈으로 들어왔다.완벽하게 문워크의 탭댄스는 아니었지만 양준혁은 1년 반전의 무릎팍도사에서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무릎팍 도사의 녹화일이 4월 15일 이고 현재 양준혁의 홈런이 340개이니까 <무릎팍도사 허구연편>이 방송될 때쯤이면 신기록 수립을 했을 것이라며 예언을 했는데 적중한 셈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중계의 끔찍한 방송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중계를 하다가 터진 방송 사고를 회상 하면서 진저리를 쳤다.한국은 대만과의 경기에서 2회까지 8-0을 크게 앞서 있었다.경기 초반부터 너무 크게 앞서 있어서 2점을 더 내면 콜드 게임이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대만에 8점을 내주고 연장을 치르면서 9-8로 한 점 승리를 겨우 거둬서 허구연 해설위원은 속이 타고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구 중계가 끝나고 다른 경기로 연결되어야 했는데 다른 경기 장면이 나오지 않고 야구 캐스터와 해설 위원의 말이 그대로 방송에 노출이 되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평소처럼 방송이 다른 곳으로 연결 되었다고 생각하고 헤드셋을 벗고 사담을 나눈 대화가 3분여 동안 그대로 방송되었다.쉽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너무나 힘들게 승리를 한 한국 대표팀의 경기에 분통이 터져서 "드라마네. 주연 한기주, 감독 김경문.. 윤석민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 했어" 라는 사적인 대화가 오디오 사고로 송출이 된 것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이런 경기 후에는 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만약 그 때 욕설을 했다면 방송을 다시는 못했을 것이라면서 아찔한 순간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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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 도사 허구연>편이 방송이 되자 다음뷰 블로그에서도 무릎팍도사 포스팅 글이 많이 보였다.원래 <무릎팍도사>는 시청율도 높고 인기가 좋아서 다음뷰 블로그에서는 선호도가 매우 높은 글감이었다.항상 <무릎팍 도사>가 끝나면 그 다음날 많은 글들이 연예 카테고리 전체를 도배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무릎팍도사 허구연>편을 보고 쓴 블로거들의 글 중 유난히 <1박2일>과 연관하여 포스팅 한 글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베스트 글에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2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문화/연예 카테고리 베스트 1위에 하루 종일 올라와 있었던 어떤 블로그의 글은 100개 넘는 댓글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었다.이렇게 네티즌에게 욕을 먹는 글은 다 이유가 있다.네티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그것도 일부에게 욕을 먹는 게 아니라 수많은 댓글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며 비난을 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그 글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무릎팍도사>의 시작부분에 강호동이 ‘1박2일 때문에 뿔이 나서 온것이냐’는 질문에 ‘1박2일은 뿔이 난 것도 아니다’며 ‘야구 해설을 한지 30년 가까이 되는데도 한국 야구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 뿔이 난 것’이라면서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릎팍 도사>를 찾았다고 했다.허구연 해설위원은 우리의 경제 수준에 비하여 30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는 한국 야구의 환경,시설,대우 때문에 뿔이 나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것이었다.

<무릎팍도사>를 제대로 시청을 하지 않고 글을 포스팅 하거나 전문적인 지식 없이 자기 마음대로 포스팅 하는 블로그들 때문에 연예 블로그 전체가 욕먹을 수 있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무릎팍 도사 허구연>1회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뿔이 났다는 표현은 <무릎팍 도사>에서 분명하게 화가 났다는 의미라고 설명을 해주었다.설마 진짜 머리에 뿔이 났다고 생각하는 블로그들이 있을까?워낙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글을 쓰는 블로그들이 있어서 노파심에서 써 본것이다.허구연 해설위원의 발언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포스팅 한 글은 마치 진짜 머리에 뿔이 났다는 표현과 동일하게 보이기에 제발 제대로 방송을 시청하고 글을 포스팅 하라는 의미에서 비유를 해본 것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유를 설명한 다음 허구연 해설위원의 프로필이 소개되었고 베이징 올림픽 때 일본에 비하여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했던 한국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이날 허구연 해설 위원은 정말 한국 야구에 대해서 할 말이 많으신 것처럼 구구절절 한국 야구에 대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무릎팍 도사>가 항상 그렇듯이 예능프로이기 때문에 너무 진지한 이야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 잠시 동안 허구연 해설위원과 <무릎팍도사> 출연진들은 농담을 건네며 이만기,김구라 등을 언급하면서 개그모드에 몰입한다.그리고 개그모드가 끝날 무렵 ‘1박2일’을 보셨냐는 강호동의 질문을 시작으로 허구연 해설위원의 ‘1박2일’에 관한 이야기가 잠시 동안 시작된다.물론 ‘1박2일’의 화제는 개그모드에 등장한 소재처럼 그냥 스쳐지나 가는 이야기로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냥 스킵(skip)을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이날 허구연 해설위원의 <1박2일>에 관한 이야기는 서론 부분까지 치더라도 총 1분 15초에 불과 했다.1분 15초도 허구연 해설위원이 혼자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강호동이 이야기 한 부분도 있었다.<1박 2일>에 대한 본론의 이야기는 불과 수십 초에 불과한 것으로 2~3 마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의 <무릎팍 도사>에서의 발언 전문

강호동: 그때(1박2일 사직야구장 방문 때) 물의의 일으킨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허구연: 잘 아셔야 할게 뭐냐면 MBC-ESPN에서 중계방송을 하면 그날의 방송 중계권은 MBC-ESPN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연간 엄청난 돈을 주고 계약을 했기 때문에 다른 방송이 들어와서 방송을 하게 되면 사전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이런 절차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강호동: 그렇습니다.아~

허구연: 그러니까 우리는 당황을 하는 겁니다.방송은 계획된 시간표대로 구성이 됩니다.클리닝타임이 되면 3분간의 공격,수비 교대 시간이 주어집니다.사전 광고는 3분에 맞추어서 다 팔립니다.그날 1박2일 공연은 10분을 하였습니다.끝날 기미도 안보이고 또 있으니까 앵콜 받고 막춤인지 춤을 막 추는데 PD가 와서 이거 뭐하는 거에요 하면서 우왕자왕 하기에 이건 문제가 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더 결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날 롯데가 야구를 졌잖아요?

강호동: 네. 역전 역전을 거듭하다가 ....

허구연: (‘길었던 클리닝 타임으로 흐름이 끊어졌다고 생각’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롯데 팬들은 롯데가 졌으니까 뿔이 난거죠.저 예능 프로하는 분들이 프로야구의 메커니즘을 모르니까 안내를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못되었다는 겁니다.시도 자체는 절대 잘못된 것은 아니죠.

강호동: 아..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죠...

허구연: 시도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 우리가 굉장히 미안해했어요.

위의 글은 허구연 해설 위원의 <1박2일> 발언 전체를 그대로 인용해 본 것이다.허구연 해설위원이 중계권 때문에 밥그릇 싸움 또는 정치적 차원에서 <1박2일> 사건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허구연 해설 위원은 자신이 야구 해설가로서 그 당시 현장에서 느꼈던 점을 잠깐 스쳐지나 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MBC-ESPN 중계권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 뿐이었다.MBC-ESPN 중계권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고 하여 허구연 해설위원이 KBS <1박2일>팀과 밥그릇 싸움이나 하자는 의도 또는 정치적 차원에서 <1박2일> 사직 야구장 사건을 언급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으며 이날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목적이 <1박2일> 이야기 때문도 아니었다.또한 1분 정도 되는 <1박 2일> 사직 야구장 사건 언급 중에서 MBC-ESPN 중계권은 단지 첫마디 였다는 점만 빼면 그 비중도 작고 그냥 저런 점도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흘려들으면 되는 부분이다.이 한마디 발언을 가지고 중계권 밥그릇 싸움 또는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을 한다던지 찬반 양론을 펼치는 블로거들의 글은 인기있는 주제를 이용하여 조회수나 느려 보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MBC-ESPN 중계권에 대한 이야기는 허구연 해설위원이 MBC 야구 해설위원이니까 당연히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허구연 해설 위원이 <1박2일>멤버나 스텝이 아닌데 <1박2일>의 입장을 이야기 한다면 더 이상한 거 아닌가?그리고 허구연씨는 야구 해설 위원이지 방송국 사장이나 임원이 아니다.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중계권 때문에 밥그릇 싸움을 할 이유가 있는가?

<무릎팍도사>에서 허구연 해설위원의 <1박2일> 관련 발언 1분 중에서 대부분은 야구 매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촬영만 열중하여 당시 현장에 있었던 롯데팬들이나 관중들 그리고 심지어는 야구 해설자였던 허구연 해설위원 자신을 비롯한 MBC-ESPN 스텝들 까지 당황스럽게 만든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필자는 롯데 팬으로 사직 야구장 뿐 아니라 임수혁 돕기 일일 호프 등 롯데팬 행사에도 자주 참석하여 롯데 선수들을 만나서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야구 매니아로서 필자는 허구연 해설 위원의 지적이 정말 잘 이해가 된다.사직 야구장은 1루 쪽에 있는 관중들의 경우 야구 매커니즘까지 이해하면서 롯데를 응원하는 광팬들이 많다.전문가 수준 빰칠 정도로 야구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야구를 관람하는 롯데 광팬들은 응원도 아무 때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

롯데가 수비 할 때는 응원은 커녕 박수 소리 하나가 작게 들리는 것조차 용납을 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민감하다.사직 야구장에서 탄생한 1루 견제 함성 ‘마’도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고 롯데 응원가와 부산 갈매기도 아무 때나 부르지 않는다.또한 파도타기도 아무 때나 타는 게 아니다.롯데의 수비 때에는 쥐죽은 듯 조용하게 있다가 공격할 때 커다란 함성과 함께 응원을 하는 이유는 야구 매커니즘 때문이다.

이런 롯데 팬들에게 <1박2일>이 사직 야구장까지 찾아 와준 것은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나 고맙고 환영하지만,야구 매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점에 대하여 롯데 팬들이 유감의 뜻을 표시하면서 <1박2일>에 항의를 한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또한 이날 <1박2일> 때문에 당황했던 MBC-ESPN 스텝들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방송 중계권의 밥그릇 싸움 등을 떠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을 것이다.

<무릎팍 도사 허구연>편을 보고 포스팅한 블로그 글은 평소와는 달리 연예 전문 블로거가 아닌 일상 카테고리쪽이나 시사쪽의 블로거들의 글이 올라와 있어서 평소와는 약간 다른점이 있었다.또한 <무릎팍 도사 허구연>에서 보여줬던 중요한 부분은 다 생략을 하고 불과 1분도 안되는 허구연 해설위원의 <1박2일> 발언을 주제로 포스팅을 한 글들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눈에 띄었다.

이런 현상은 다음뷰에서 <1박2일>과 <롯데자이언츠>,<사직 야구장>은 항상 베스트에 올라와 있는 인기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블로그들이 의도적으로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아무리 인기를 노리고 글을 포스팅 하더라도 덮어 놓고 아무렇게나 판단하여 글을 쓰면 안된다.

만약 필자가 야구를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허구연 해설위원의 발언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야구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면서 사직 야구장 1루 쪽에서 열렬하게 응원을 하고,롯데가 야구에 져서 사직 야구장 근처에서 밤새도록 혼자 술 마시고 부산갈매기를 부르면서 길거리를 돌아다녀 본 적이 있는 롯데 팬으로서 허구연 해설위원의 발언을 정확하게 이해한다.

‘더 결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날 롯데가 야구를 졌잖아요?’라는 허구연 해설위원의 발언이 어느 블로그가 정말로 엉터리로 써 놓은 것 처럼 롯데구단과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또한 허구연 해설위원 자신도 사직야구장에서 <1박2일>이 야구매커니즘을 무시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황했던 점을 롯데팬이나 일반 관중들의 입장 뿐만 아니라 MBC-ESPN의 스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입장과 시각으로 접근하여 언급을 한 것이지 중계권을 가지고 밥그릇 싸움이나 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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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은 1951년 2월 25일 생으로 올해 59 살이다.초등학교 5학년 때 선수 선발에서 홈런을 쳐서 시작부터 4번 타자로 활약을 했다.체육 특기생으로 고려대에 입학을 했다.대학 야구 연맹전 홈런왕,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1976년 한일 올스타전에서 다리부상으로 은퇴했다.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MBC 해설위원이 되었다.1985년 청보 핀토스 감독을 맡아 약 1년 동안의 전적이 15승 2무 40패를 기록했다.당시 총 6개 구단 중에 6위였다.1991년 MBC 해설위원으로 컴백했다.

베이징 올림픽 때 일본팀은 호텔에서 숙식했지만,한국 선수단은 선수촌에서 숙식했다.한국 선수단 대기실에는 바나나,김밥 등의 간식이 있었고 일본에는 호텔에서 부페식으로 먹었다.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한국 선수단은 대기실의 음식을 잘 먹지 않고 컵라면을 먹었다.이승엽도 컵라면을 먹고 야구를 한다고 방송 중에 말했는데 이승엽 부인이 이를 듣고 울었다고 한다.

일본은 고등학교 야구팀이 4000여개 이지만 한국은 50여개에 불과하다.돔구장도 일본은 6개인데 한국은 하나도 없다.연봉은 일본의 1/17 수준 밖에 안된다.열악한 현실과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고 일본을 이긴 것이다.

야구해설은 방송 3사가 동시에 하기 때문에 비교가 되어서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는 허구연 야구 해설 위원의 예측이 잘 적중하는 이유는 데이터와 청보핀토스 야구 감독 경력 등 야구에 대한 전반적인 식견 때문이다.

허구연은 부산 대신초등학교 출신이었다.부산 대신초등학교는 부산에서 야구 준우승팀으로 야구를 잘하는 학교였다.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내자 6학년 선배를 제치고 바로 4번 타자를 했던 허구연의 집은 부산공설운동장 옆이었기 때문에 야구와 축구를 보면서 성장했다.운동 신경이 발달되어 있는데다가 전 게임을 봤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어서 남들보다 시작이 빨랐던 허구연은 걸음도 빠르고 허벅지가 굵어서 체격적으로 축구를 했다면 축구를 야구보다 더 잘했을 거라고 한다.

체육특기자가 없던 시절 허구연은 전국 석차 상위권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경남중학교는 전국 대회에 우승팀이었는데 허구연은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그 시절에는 한 야구부 선수가 시험을 쳐서 세브란스 의대에 합격을 할 정도로 선수들이 공부도 잘했다.프로가 없던 시절 야구는 공부하면서 하는 특기 활동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초등학교에서만 야구를 하려고 했던 허구연은 중학교에 입학하자 학교 교장,교감등이 허구연 야구를 시키기 위하여 집으로 찾아야 허구연 부모님을 설득하는 등 학교가 난리가 났다.부산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가 입학을 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먼저하고 야구를 하라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은 허구연은 대학 야구리그 홈런왕 출신이다.프로야구가 없던 그 시절에는 공의 반발력도 별로 없고 동대문 야구장의 펜스도 지금보다 컸다.홈런이 잘 안날 때 였기 때문에 홈런 몇 개만 쳐도 홈런왕이 될 수 있었다.

허구연은 1976년 한일 올스타전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엄청난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1차전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쳐서 1:0으로 일본을 이겼다.2차전에서도 홈런을 쳤지만 1:4로 일본에 졌다.1.2차전 통틀어 유일하게 타점을 기록한 허구연은 대전에서 열린 3차전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감독에게 빠지겠다고 했지만 감독은 안된다고 했다.한국 수비 때 더블플레이를 시도하다 2루수였던 허구연은 일본 선수 마쓰모로의 슬라이딩 태클에 발목 부위가 두동강으로 끊어졌다.그 후 네 차례나 수술을 받았던 허구연은 선수 생활을 빨리 끝낼 수 밖에 없었다.

1968년 고교야구 선발팀으로 일본에 방문한 허구연은 너무나 차이가 났던 경제수준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그당시 한국에는 귤이 없어서 한국 고교 선발팀은 신칸센 열차에서 파는 100엔 짜리 귤 한보따리를 사서 계속 먹었다.1968년 한국에는 에어컨과 자동문이 없었는데 일본에는 자동문이 있어서 너무나 놀라고 충격을 받은 한국 선수들은 신칸센 열차안에 1회용 비누가 있었는데 너무나 신기하여 가방 속에 다 집어넣었다.그 당시 한국은 잘사는 집은 세숫비누를 사용했고 못사는 집은 빨랫비누로 세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허구연은 오기가 생겨서 20년 후에는 반드시 일본을 잡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고등학교 때부터 자부심과 오기가 있었다.허구연 시절의 일본 야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지만 현재 한국 야구 후배 선수들에겐 일본은 언제든지 해볼 만한 상대가 되었다.40년 전과 확 달라진 현실이다.현재 한국 선수들은 청소년 대회부터 일본을 이겼기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하다.지난 11년간 한일 전적에서도 16승 14패로 한국 야구는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허구연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목적과 이유부터 다른 출연자들과는 많이 달랐다.다른 출연자들은 전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릎팍 도사를 찾거나 영화,드라마,음반 등이 새로 출시가 되면 이를 홍보하기 위하여 출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허구연은 40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열악한 한국 야구 현실을 개탄하며 화가 나서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다른 출연자들과는 달리 무릎팍 도사 시작부터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에어컨 하나 없이 야구를 하는 어느 야구장에서 에어컨을 혼자 틀어 놓고 야구를 관람하던 어느 시장을 비판하는 이야기부터 할 정도였다.

고교 야구시절 일본을 방문하여 너무나도 큰 경제적 격차를 직접 몸으로 체험을 한 허구연은 태어나서 가장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했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반드시 일본 야구를 이겨야 하겠다는 자존심과 오기만 커졌을 뿐이었다.

발군의 실력으로 한일 올스타전에서도 계속 홈런을 치면서 한국 야구를 이끌었던 허구연의 선수 생활은 뜻하지 않은 불의의 부상으로 한일전에서 끝내야 했다.하지만 프로야구 감독과 야구 해설자로 30년 동안 한국 야구를 지켜주고 있다.

허구연의 선수시절에는 커다란 벽이었던 일본야구였지만 이제 한국 야구 선수 후배들이 일본과 대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그의 표정에서 야구에 대한 사랑과 애환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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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9일 첫 방송에서 11% 이상의 높은 시청율로 동시간대 예능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던 <야심만만2>는 최근들어 최악의 시청율을 보이며 월요일 밤 예능프로그램에서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2009년에는 다시 방송에 복귀한 개그 황제 최앙락을 영입하여 <달려라 낭만버스>라는 코너를 신설했지만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

<야심만만2> 제작진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요절복통 유치장>이라는 새로운 코너를 신설하여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다.

또한 유일하게 <야심만만2>의 홍일점이였던 여성 MC 임정은을 하차시키고 강호동,최양락,MC몽,윤종신 4명의 남성 MC 체제로 진행된다고 한다. 
 

    야심만만2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요절복통 유치장>은 동음이의로 ‘유머가 판치는 장’이라는 의미라고 한다.또한 유치장 세트처럼 꾸며서 유치장을 배경으로 하여 토크쇼가 진행된다고 한다.

<달려라 낭만버스>는 버스를 배경으로 하여 MC들이 버스 운전사 복장을 하고 나와서 토크쇼를 진행했다.

시청자들은 <달려라 낭만버스>를 보면서 분위기가 칙칙하고, 토크로 버스요금을 내는 등 뭔가 버스를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는 거 같은데 뭐가 뭔지 이해를 못하겠다면서 너무 산만한거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계속 작은 주제가 주어지고 출연자들은 이에 맞게 토크를 했지만 출연자가 보통 4명이나 되고 주제와 다르게 이야기한다던지 하는 등의 이유로 전반적으로 산만하게 보였다.

그렇다고 하여 시원하게 웃기는 장면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진실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적당한 선에서 주어진 주제에 신경쓰지 않고 가볍게 이야기를 하는 수준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만약 이런 설정을 다른 토크쇼와 차별화된 컨셉이라고 제작진이 생각하고 설정했다면 이미 발상부터 시청율 측면에서 완전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야심만만2>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1박2일>의 멤버 2명이나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예능 프로그램 전체 시청율 1위인 <패밀리가떴다>의 윤종신도 출연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최고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고정 출연자들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잘 활용하여 차별화된 토크쇼를 만들지 못했다.강호동은 <무릎팍도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특유의 힘이 넘치는 끼와 개성을 <야심만만2>에서는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무게만 잡고 앉아서 진행만 했고,MC몽 역시 <1박2일>에서 보여 주었던 활발하고 재미있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채 거의 아무말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점잖하게 앉아 있기만 하였다.

윤종신과 최앙락도 타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위축되어 무거운 분위기로 점잖은 모습만 보여주었다. 
 

새코너 <요절복통 유치장> 어떻게 바뀌어야 회생할까?


제작진이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요절복통 유치장>이라는 새로운 코너를 신설했다고 하는데 유치장이라는 배경이 좀 어둡고 무겁게 느껴진다.

<달려라 낭만버스>에서 MC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끼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종일관 무겁게 무게만 잡고 있어 칙칙한 분위기가 나서 이런 분위기 타파가 가장 시급한 것은 맞다.하지만 왜 하필 유치장이라는 배경을 선택한것인지 의문이 든다.MC들이 <달려라 낭만버스>에서 처럼 역량과 끼를 발휘하는 것이 제한되고 무게만 잡는 연출이 또 반복된다면 유치장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배경 때문에 더욱 분위기가 가라 앉아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게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배경만 바꾼다고 하여 타 프로그램과 차별성이 생겨서 토크쇼가 다시 회생되는 것도 아니다.게스트 출연자들을 최대한 부각시켜 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MC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면서 이와 동시에 그동안 MC들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새장속에 가두어 둔것을 해체하여 MC들에게 충분하게 역량과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게스트로 출연하는 출연자들에게도 좀더 가치있는 토크를 하도록 해야 한다.진솔하게 속마음을 털어 놓게 한다던지 아니면 그냥 웃길려면 확실하게 개그에 초점을 맞춘다던지 하는 등의 확실하게 차별성 있는 토크쇼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산만하기만 하고 칙칙한 토크쇼는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현재의 시점에서 <야심만만2>가 새로운 코너 <요절복통 유치장>을 선보여 분위기 쇄신을 시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보인다

기존 프로그램의 답습이 아니라 새로운 기획과 포맷으로 MC와 게스트들이 마음놓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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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로 스타가 되어 버린 이준기의 무릎팍 도사 2편이 방송되었다.<무릎팍 도사 이준기2편>에서는 <왕의 남자> 에피소드와 이준기에 대한 구설수 3가지를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다.
 

<왕의 남자> 에피소드를 소개 합니다

이준익 감독과 선배들은 이준기가 신인이라 주연급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하여 믿음이 없었다.캐스팅 첫날부터 걱정을 했던 이준익 감독은 “너로 인하여 영화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공길은 남자가 연기를 잘못하면 무조건 비호감이다” 라고 말했다.또한 이준기는 초반 시나리오 공개 때 동성애 영화로 잘못 비춰졌기 때문에 더욱더 연기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촬영에 들어간 신인 이준기는 선배 연기자들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주눅이 들었다.이준익 감독은 남성적이고 매서운 눈빛에 목소리와 동작이 크고 말도 많은 이준기의 모습을 버리고 여자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공부하라고 했다.그래서 트랜스젠더 바에 가서 일반 남자와 조금 다른 시선처리,표정,말투,몸짓을 다 배운 이준기는 여기서 공부를 한것이 촬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준기는 신인이여서 인지도가 없어서 <왕의 남자>와 동시에 개봉되었던 영화 <태풍>,<작업의 정석>,<킹콩> 등의 한국을 대표하는 대스타와 초특급 블록버스트 영화와 경쟁하는 것 자체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지 얼마 안되어서 개봉도 안된 상태에서 예쁜 남자가 나온다는 등의 엄청난 입소문이 퍼져서 이준기의 사진이 있는 포스터를 제작하여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기자들도 관객이 300만명 정도 될 것이라 예상을 했다.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준기는 스스로의 연기가 너무 창피하여 시사회에도 아버지를 초대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혼자 보시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준기에 대한 구설수 3가지의 사연은?

이준기의 구설수 1번째는 보아,이효리 등과의 열애설이다.이준기가 직접 만나본 보아는 털털하고 주관이 뚜렷한 좋은 동생 이였고 이효리는 누나로 고민을 상담하는 사이였다.이준기는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등의 이성 친구 얘기는 서먹해질까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안했으며 보아와의 만남에서도 연예계의 일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데뷔 이후 8년 동안 연예다운 연예를 안해봤다는 이준기는 현재는 논현동에 여동생과 함께 산다.

일본교토에서 영화 <첫눈>을 촬영할 당시 뒤에서 자전거가 딱 서더니 어느 일본인 남자가 일본어로 정말 매력적으로 잘생겼다고 하면서 명함을 건네며 자신이 잘 아는 술집에서 술 한잔 하자고 데시 한적이 있다는 이준기는 지금 생각하면 재미난 추억이지만 자신은 이성이 좋고 이성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한다.

이준기의 구설수 2번째는 ‘일본은 내 나라’라고 발언하여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한 실수이지만 억울한 점도 많다는 이준기는 친구의 미니홈피에서 철없이 주고받은 사적인 글이 그대로 캡처가 되어서 공식적인 발언처럼 되어서 무수히 많은 비난의 기사들이 쏟아졌다면서 과거를 회상했다.하필 <왕의 남자>가 관객 동원 1000만을 앞둔 상태라 사건이 더 커졌다고 말한 이준기는 “자신의 글을 보고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에게 사과하기 위하여 사과문을 올렸는데 이 때문에 사건이 더 켜졌다.사적인 얘기를 공식 발언으로 인정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구설수 3번째는 기자들에게 가장 밉게 보인 연예인 1위,가장 단시간에 건방져진 배우 1위 이준기다.이준기는 <왕의 남자>로 신드롬이 엄청날 때라 고생했던 아르바이트 시절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너무나 많은 매체들이 관심을 가져줬을 때 다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였다.매체와의 인터뷰만 12시간 동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였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인터뷰 하다가 반복되는 인터뷰에 지쳐서 무성의하게 취재에 응했다.이준기는 수백 명의 기자 중 한명이지만 기자들에겐 이준기를 처음 만난것이였기 때문에 기자들 반이 이준기 안티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후 <왕의 남자> 후속작인 영화 <플라이 대디>,<눈꽃> 이 흥행에 참패를 한다.부담으로 다가왔던 주변의 엄청난 기대감이 후속작의 흥행 참패로 이어지고 오히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이준기는 “당시에는 신드롬,관심들 때문에 작품에 몰입도 못했던 터라 흥행 참패는 당연한 것”이었다면서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했다고 한다.

이후 이준기는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일지매>를 통하여 연기력과 시청율 보증수표라는 것을 인정받았고 기자들과 팬은 다시 이준기에게로 돌아왔다.악플도 많이 없어졌다.

2008년 SBS 연기 대상 시상식에서 선배들과 함께 개그를 하게 된 이준기는 처음에는 나레이션만 하기로 했는데 선배들이 땀 흘려 가면서 열심히 개그를 하는데 자신이 너무 건방져 보여서 몸개그를 했는데 주위 지인들과 매니저의 반응은 매우 안좋아서 실망했다고 한다.이준기는 최근에 <분장실의 강선생님> 개그를 촬영 현장에서 사용하여 웃겨 보기도 한다.

이준기는 팬들이 많은 사랑과 믿음을 주기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책임감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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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어렵게 산다는 고민을 가지고 무릎팍 도사를 찾았다.고되게 일을 하는 것을 즐기고 엑션신도 좀 다치면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대역 없이 엑션연기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준기는 MBC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마주오던 트럭을 피해서 가드레일을 들이박는 차 엑션신이 있었는데 연기 욕심에 대역 없이 직접 하겠다고 했다.한 스탭이 이준기를 걱정하면서 차의 에어백을 뜯었냈다.에어백이 터지면 배우 얼굴이 안 보여서 다시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정말 제대로 차가 들이박아 실감나게 연기가 되었고 이 장면이 명장면에 뽑히기도 했다.
 

1200만명 관객 돌파한<왕의 남자>의 '공길'역 이준기는 누구?

이준기는 1982년 4월 17일 생으로 올해 나이 28살이다.스무살 때,배우의 꿈을 안고 무일푼으로 부산에서 상경한 이준기는 오디션 모두를 낙방하며 무명시절이 시작되었다

이준기는 일본영화 <호텔 비너스>로 데뷔했다.이후 드라마 <나 어떻게 해>,영화 <발레교습소>등 종횡무진 활약을 했다.2005년 <왕의 남자>에서 ‘공길’역으로 관객 1200만을 돌파하여 연예대상,백상예술대상,대종상,대한민국 영화대상 등 신인 남우상을 수상했다.2006년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키며 CF킹으로 등극했다.이준기가 광고를 한 음료는 최단기간 매출 100억을 달성했다.

<왕의 남자> 이후 <플라이대디>,<첫눈>이 흥행에 실패하여 인기 거품론까지 일게 된다.하지만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일지매>를 통하여 강한 액션연기와 안정된 감정연기로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며 2007년 MBC 연기대상 우수상,2008년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인기상까지 수상하여 신드롬을 넘어선 배우로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한다.
 

배우를 꿈꾸는 이준기의 아르바이트와 오디션의 시간

이준기는 원래 꿈이 프로그래머이다.입시 준비로 바쁜 고2 말 때 친구 권유로 연극 <햄릿>을 보러갔다.관객들이 몰입하는 것을 보고 굉장한 힘이라고 느껴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이준기는 부모님 허락하에 연기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끼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게 되었다.친구들과 놀다보니 유흥비가 필요했는데 4~5개월 학원비를 고스란히 유흥비로 탕진했다.그 당시 학원비가 한달에 40만원 정도했다고 한다.

학원에서 학원비를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이준기 집에 전화를 했다.혼이 날것으로 생각한 이준기는  이준기 아버지가 넉달치 학원비를 전부 동전으로 바꾸어서 동전 보따리를 보여주시며 학원에 갖다 주라고 하여 충격을 받았다.엄청 화가 나셔야할 이준기 아버지는 돈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해주려고 동전으로 다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이준기는 동전 보따리를 들고 학원에 가서 학원비를 지불했으며 이 사건을 통하여 많은 교훈과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 고3 때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겠다고 결심한 이준기는 원서비를 직접 벌어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다.미성년 자라서 아르바이트가 힘들었지만 원서비를 스스로 마련했는데 학교 입학 시험에서 다 낙방했다.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번돈을 전부다 아크로바틱 배운다고 다 썼다.이준기는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이준기 아버지가 그만두라고 했다고 한다.

고3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부산방송에서 알게 된 로버트 할리에게 재워달라고 숙박 부탁을 했다.평소 이준기의 도전 정신을 높게 사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여 로버트 할리집에서 2달 정도 신세를 졌다.

그후 이준기는 1층 호프집,2층 당구장이 있는 곳에서 일도 하고 그 건물 옥탑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옥탑방은 겨울에는 얼어서 물이 안 나오고 여름에는 쥐와 바퀴벌레가 엄청나게 많았다.문을 열고 들어가면 천장에 바퀴벌레가 가득했다.바퀴벌레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이준기는 아르레기로 고생을 했다.당구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자 호프 서빙도 하게 되었다.

5개월 정도 이런 고생을 한 이준기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에서 뭐하고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대뜸 화를 내어서 크게 다투게 되었고 사장이 이준기의 뺨을 때렸다.펑펑 울면서 물건을 다 집어 던지고 나왔고 쫓겨나게 되었다.그동안 일한 돈 15만원을 받아 가지고 나왔다.

이날 동대문에서 5번이나 길거리 캐스팅을 받은 이준기는 자신이 음식점에서 썩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기획사를 찾아갔다.기획사에서는 트레이닝비가 필요하다면서 원래 2000만원인데 1200만원 정도에 해준다고 했다.정상적인 기획사는 처음에 돈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사기이지만 그 당시에는 돈을 못 줘서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이준기는 인터넷을 통해 연기학원에 갈 돈 없는 연기 입시 지망생들을 만나 연습실을 빌려서 함께 연습을 했다.연습하는게 너무 행복하여 밤샘을 하면서 연습했다.연습실에서 먹고 자면서 건 마지막 승부수 였다.부모님께 너무 죄송하여 2년 동안 한번도 부산에 가지 않고 전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열심히 연습하여 서울예술대학에 합격했다.그 때부터 부모님의 칭찬이 이어졌으며 이것은 2년만에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준기의 꿈은 연기자였기 때문에 오디션을 계속 보러 다녔다.때마침 모든 기획사와 영화사의 오디션을 함께 볼 수 있었던 오디션 박람회가 개최되었다.다 불합격되고 마지막 한곳이 남았는데 때마침 SBS <리얼코리아>에서 신인발굴 현장에 취재를 나왔다.그때 오디션 보러 들어간 이준기를 촬영했다.매니저는 촬영을 의식하여 이준기에게 명함을 건내주었다.합격으로 오해를 한 이준기는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지만 아무 연락도 없었다.

결국 이준기는 기획사를 직접 찾아가서 매니저를 만났고 매니저는 찾아온게 대견하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뭐든지 해봐라.기회가 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대답했다.드디어 한달 뒤 연락이 와서 본격적인 배우 생활이 시작되었다.
 

배우를 꿈꾸는 이준기의 배우 입문기

이준기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왔다.2차까지 가는 오디션에 합격하여 일본영화 출연이 확정되었다.그리고 동시에 한국영화에도 출연한 기회가 생겼다.한국영화를 촬영하는게 더 좋지만 이준기는 일본 영화 감독이 더 마음에 들어서 일본영화를 선택했다.신인배우라 그 당시 갤런티가 500만원에 불과했다.이준기가 일본에 가지고 간 돈은 2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첫날만 매니저가 일본에 와서 함께 회의를 하고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그당시 이준기는 너무나 협소한 모텔에만 머물다 보니 답답해졌다.그당시 영화사에서 하루 식비로 3000엔(한화 2만 8천원) 정도가 나왔는데 밥은 안먹고 하루하루 그 돈을 다 모았다.끼니는 편의점에서 200~300엔으로 해결했다.이돈을 모아 처음으로 촬영장과 모텔 생활에서 탈출했고,일본에서도 이자까야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촬영 끝나기 1주일전 매니저가 일본에 다시 왔다.이준기는 밥 안먹고 모은 돈을 매니저를 위해 쓰려고 관광지도 미리 답사했다.10년 전 그 매니저와 아직도 일을 함께 한다.매니저 뿐 아니라 주위 스태프가 10년째 그대로다.

일본영화 촬영 이후 소속사는 더욱더 사정이 나빠졌다.어느날 회사대표와 이준기가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알고 지낸 기자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그 기자들이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있는데 광대역인데 신인배우 비중이 크다면서 오디션을 받아보라고 했다.그래서 다음 날 영화사를 찾아가서 시나리오를 받아 왔다.그야말로 우연하게 접하게 된 <왕의 남자>였다.거의 주인공 비중이였던 ‘공길’역에 어마어마한 신인들이 몰렸다.1000:1의 경쟁률이었다.

한 달 동안 세차례의 꼼꼼한 오디션을 했다.이 작품에 100% 목숨을 걸려고 했던 이준기와 달리 소속사에서는 좀 힘들다는 분위기였다.오디션 대본을 미친 듯이 연습했다.주위 연기자 선배들에게 연기 지도도 받고 중성적인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 서클렌즈까지 끼고 외모,대사,제스처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1차 오디션에서는 한단락 마다 모든 엑션을 준비했다.과거에 배운 아크로바틱을 활용하여 덤블링도 선보였다.2차 오디션에서는 ‘공길’역에 맞게 장구 같은 것을 배워갔다.단지 대사만 외운 것이 아니라 ‘공길’의 삶을 간파해서 오히려 감독에게 역 질문을 하면서 열정을 보여주었다.3차 오디션에서는 영화에 쓰일 동작을 직접 준비했다.이준기는 자신이 짠 동작을 무조건 영화에 넣을 것이라는 각오로 준비했고 실제 영화에서 자신이 짠 동작을 선보였다.

최종적으로 이준기가 ‘공길’역에 합격을 했다.이준기의 이런 열정 덕분에 <왕의 남자>는 2005년 관객 1200만을 돌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무릎팍 도사 이준기 1회>는 이준기가 연기자가 되기 까지의 성장과정과 배우 입문기를 보여주었다.19살 이후로 부모님에게 한번도 돈 받은 적이 없었다는 이준기는 고등학교 시절 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신인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상황에서도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얼굴이 곱상하게 생겨서 고생을 전혀 안한것 처럼 보이는 이준기가 연기자의 꿈 때문에 어린 나이에 고생을 많이 한거 같다.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던 이준기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정을 다하여 1200만명 관객 동원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우며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그의 연기자를 향한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영원히 우리 곁에서 빛나는 연기자가 되어 주길 바란다. 

이준기는 다음주에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무릎팍 도사 이준기 2회>가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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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내들은 나이가 들어도 남편의 애절한 사랑을 꿈꾼다.김영임의 고민은 결혼한지 30년 되었는데 “남편과의 애틋한 사랑을 다시 하고 싶어요” 이다.김영임은 30여년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애정표현을 잘하지 못했고,결혼하고 난 2주일 후부터 남편인 이상해는 애정표현을 하지 않았다.남편 이상해는 연애시절에는 김영임을 공주처럼 대접하고 보석처럼 애지중지 하면서 원하는 대로 다 해줬다.하지만 결혼 2개월 후부터는 혼자 가든지 혼자 먹던지 신경을 안썼다.그래서 김영임은 사기 결혼 당했다고 생각했다.

국악계에서 가장 친숙한 목소리, 국민 명창 김영임은 누구인가?

김영임은 1953년 12월 27일생으로 57살이다.고교시절 한국무용에서 소리꾼으로 전향했다.1973년 MBC 국악드라마 <내 강산 우리 노래>주인공으로 전격 발탁 되었다.1974년 첫앨범 <회심곡>을 발매했고, 100만 이상 판매하여 대 히트를 친다.밀리언셀러를 보유한 최초의 국악인이다.

코미디언 이상해의 끈질긴 구애 끝에 코미디언과 국악인 커플 1호가 탄생했다.이후 1995년 KBS 국악대상을 수상했다.1997년,2004년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을 수상했다.2003년 국민화관 훈장과 대통령상을 수상했다.2005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문화훈장을 수상하여 최초로 훈장 부부로 등극했다.

16년간 매년 500회 전국 순회공연과 해외공연을 하여 우리 소리를 알리고 있는 김영임은 공연 중 같은 한복은 다시 입지 않으시는 국악계의 패리스 힐튼이다.

혼을 담은 소리로 30년간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국민명창 김영임의 소리 입문기

김영임은 고등학교 당시 고전무용을 전공했는데 처음으로 접하게 된 소리가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처음 듣는 순간 소리에 매료가 되어서 입문하게 된것이다.김영임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녹음기도 없고 악보도 없었다.오로지 수업시간의 기억으로만 연습해야 했던 시절이였다.소리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버스에 올라타면 무조건 소리를 했는데 버스에 탄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영임은 소리에 푹빠지면 남이 옆에 있는 것조차 잊어버렸고 집에 가면 이불 속에서 노래를 불렀다.김영임의 집 마당에 낙숫물을 담아놓는 큰 항아리가 있었다.그 빈 항아리 속에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다.항아리 속은 소리가 울려서 잘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힘든 것도 잊고 몇 시간이나 항아리 속에 얼굴을 넣은 채 노래를 불렀다.소리를 안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밥 먹는 시간외에는 계속 소리를 했고 피를 토한 적도 있었다.소리를 하는 순간만큼은 아픔도 잊을 정도로 소리가 좋았다.

남편인 코미디언 이상해와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에피소드

김영임은 국악드라마의 여주인공과 밀리언셀러 국악인으로서 그 당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그러던 중 김영임이 24살 되던 해에 이상해가 나타났다.이상해는 한 번만 만나 달라 꼭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처음 만나서 대뜸 한 이야기가 결혼 해달라는 것이었다.김영임이 밤늦게 11시 40분 정도에 도착하면 집 앞에 항상 이상해가 있었고 지방공연에도 항상 따라 다녔다.이런식으로 이상해는 혼자 2년을 죽자 살자식으로 따라 다녔다.하루는 주위의 코미디언들이 양수리로 놀러가자고 했다.양수리에 도착하니 이상해가 수상스키를 타고 묘기를 하고 있었다.

그 후 한 매체에서 김영임을 인터뷰 하게 되었는데 기자가 취미를 질문했다.김영임은 얼떨결에 그냥 수상스키라고 대답했다.이상해가 수상스키를 타는 것을 보고 무의식중에 수상스키라고 대답했다.국악인이 수상스키를 탄다는 것에 놀란 기자는 특종감에 열을 올려서 계속 전화를 했다.양수리가서 수상스키 타는 사진 좀 찍자고 계속 전화가 왔다.발등에 불이 떨어진 김영임은 이상해를 만나게 해달라고 주위의 코미디언에게 부탁을 했고 이상해는 너무 기뻐서 새벽 5시에 김영임 집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물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영임은 이상해에게 손 흔드는 포즈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상스키를 배웠다.취재를 하러 온 기사들은 비키니 수영복을 가지고 와서 입어라고 권유했는데 이상해가 기자들에게 수상스키는 비키니 입고 하는거 아니라면서 반대를 했다.하지만 결국 입게 되었다.

그 후 스키가 너무 재미가 있어서 이상해에게 2번 먼저 연락을 했고 김영임은 고급기술인 원스키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김영임은 스키를 배우기 위하여 이상해와 만난 것이라 그 후부터 의도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줄였다.그랬더니 화가 난 이상해는 어느날 갑자기 김영임의 집 앞에서 김영임을 택시안에 들어서 넣었다.황급하게 출발한 택시 때문에 너무나 놀란 김영임은 막 소리를 질렀다.김영임은 택시를 세워 달라고 했는데,이상해가 10만원(그당시 택시 기본료가 300원이였다)을 외치자 택시는 전력 질주했다.그리고 인천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바로 이 에피소드가 과거에 김영임과 이상해 부부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여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여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는 유명한 ‘납치사건’이다.

김영임은 결혼 한 후 일주일 동안 6일을 싸웠다.부모님이 계시니 소리 내어서 싸울 수는 없었고 이상해는 화가 심하게 나면 화초 같은 것을 뿌리째 뽑아서 흔들었다.부부 싸움을 많이한 이유는 아직 철이 없었기 때문이다.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었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부모님도 계시고 하여 난감한 집안 분위기가 있었다.김영임은 27살 어린 나이에 대가족 맏며느리가 힘에 부쳤다.하지만 긴 시간을 서로 인내하며 살다보니 현재는 힘들었던 일도 추억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국악 대중화를 위한 김영임의 공연 한마당 

창은 소리를 하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창에는 판소리,민요,정가 등이 있다.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오정해는 전라도 지방 판소리를 한다.김영임은 서울,경기 지방 경기민요를 한다.같은 소리이지만 완전하게 다른 분야이다.

판소리는 춘향가,심청전,홍부전 등의 민속악의 하나로 전라도 지방에서 발달한 길게 하는 소리이다.판소리 외에 새타령,꽃 타령,까투리 타령 등의 민요는 비교적 짧은 소리이다.

경기민요는 아리랑,한 오백년 등 서울과 경기지방에 전승되는 민요의 한 부분이다.정가는 임금님 앞에서 부르는 시조 등을 일컫는 소리이다.

대단한 집 부인이 김영임 공연에 ‘판소리계에 유명하신 김영임 선생님의 판소리를 들으시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축사를 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랬다.큰 실례를 범한 것이다.김영임은 전라도 지방의 판소리를 하는게 아니라 서울,경기 지방의 경기민요를 하기 때문이다.

4시간 이상 장시간 완창 해야 하는 국악공연이기 때문에 공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된다.공연 후 국악인들은 뒤풀이에서 최신가요 부르고 댄스를 하는데 다들 끼가 많은거 같고,너무 잘 부른다.하지만 소리 인생 36년의 김영임은 가요를 불러도 소리가 된다.

김영임은 재작년 영국 로얄 필하모닉과 협연을 했다.영국 로얄 필하모닉은 영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1946년 창설되었다.Queen,U2 등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와 협연을 많이한 오케스트라로 유명하다.

김영임은 큰 가채에 큰 장삼을 펼쳐 입고 등장했다.먼저 한복의 아름다움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그 당시 관객은 외국인이 40%,한국인이 60%정도 왔었다.한 오백년을 부르는데 동서양 관객 모두 한국의 소리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우리의 소리로 소통을 할 수 있었다.유명 지휘자도 따라 부르고 우리의 가락으로 하나가 되었다.

국악인 최초 런던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 경기 소리 국악인 최초 뉴욕 카네기홀 대극장 단독 공연,16년간 매년 전국 500회 이상 공연누적 관객 수 60만명 돌파의 기록을 세운 김영임은 30년 넘는 세월을 원 없이 소리만 불러왔지만 늘 참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그리고 매번 더 준비하고 노력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한국의 소리 그 진정함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소리의 담백한 맛과 소박한 멋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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