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4월 4일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의 1편은 <무용지물 장애인 화장실과 이상한 엘리베이터>라는 제목으로 지난 4월 7일에 포스팅 하였다.1편은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 역사에서 지하철을 탑승하여 부산지하철 2호선 서면역에서 환승하기 까지 장애인 박병주씨와 동행하면서 직접 체험하고 취재한 것을 포스팅 하였다.

부산지하철 2호선 서면역에서 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까지 가는 도중 식사를 하기 위하여 3팀은 대연역에서 갑자기 하차를 결정했다.대연연 근처에 맛있다고 소문이 난 돼지국밥집이 있기 때문이다.너무 맛이 좋아서 언제나 식당 밖에 길게 줄을 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다.줄을 길게 서 있을 것으로 예측이 되었지만 3팀은 소문난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더 앞서 과감하게 대연역에서 하차를 결정했다.대연역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굉장히 높아 보이는 계단이 보였다.조금만 돌아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도 있었지만 박병주씨는 3팀 일행을 배려하여 그냥 올라가자고 했다.

대연역 하차는 원래 일정에 없었던 일이였는데 점심 식사 때문에 갑자기 결정된 일이였다. 박병주씨는 뜻밖에도 이날 전혀 예정되어 있지 않은 대연역에서 계단을 올라가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장 힘들어 했다.이날 일정 중 가장 가파르고 긴 계단을 목발만 짚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점심 식사를 끝내고 3팀은 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 방문했다.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는 고층 오피스텔에 입주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하층에서 부터 엘리베이터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박병주씨는 계단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너무나 편하게 센터를 방문했다.엘리베이터가 장애인에게는 엄청나게 의미 있는 존재이다.

이날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의 일정대로 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하였다.부산지하철노조 사무실에서의 평가회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3팀의 이날 행사 마지막 일정이였다.

이곳에서 부산장애인이동권연대 제청란 사무국장을 만났다.개량한복을 차려입고 3팀 일행을 따뜻하게 영접해 주었다.장애인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 또 한명의 장애인이 센터에 있었다.이날 우리와 동행했던 박병주씨의 여자 친구였다.제청란 사무국장은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두 사람은 손을 꼭잡고 있을 정도로 사이가 애틋하다고 했다.

박병주씨(42)는 영도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의 조직 부장이다.센터가 처음 문을 연 것은 2007년 8월이였다.자립생활센터의 주요 목적은 장애인들이(특히 중증장애인) 지역 내에서 살아가는데 미력하나마 힘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돌보아주는 가족이 없으면(돌봐주는 가족이 있어도) 결국은 장애인 수용 시설로 가는게 다반사이다.하지만 많은 장애인들은 시설 생활을 상당히 꺼려하거나 혐오한다.집단 속에서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자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와 본능이기 때문이다.

자립생활센터는 이러한 장애인들의 욕구인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이나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영도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장애인들이 살고 있고,이 장애인 대부분이 수급권자인 경우가 많다.수급권자에게는 임대 아파트가 주어지는데 영도에는 동삼동에 몰려 있다.게다가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의 장애인들이 시내로 행차를 하려면 마땅한 교통수단이 부재한 실정이다.일반 버스를 타기는 아예 그림의 떡이고 택시에는 휠체어를 실을 수가 없고 그나마 장애인 택시인 두리발이 있지만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하지만 휠체어 장애인들도 아무런 어려움이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있는데 바로 ‘장애인저상버스’가 그 주인공이다.승하차시에 경사판이 내려옴으로 휠체어를 타고서도 타인의 도움 없이 수월하게 승하차 할 수 있다.실제로 부산 시내버스 노선에 투입이 되어 운행 중에 있지만 그 댓수가 아주 미미하기에 부산에 퍼져 있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영도센터는 이 장애인저상버스를 영도에 도입 운행하는 것을 첫 사업으로 삼았다.지난 1년간 매월 한 번씩 영도센터 주체로 다른 단체들과 협력하여 영도에서 인파와 차량의 통행이 잦은 곳에서 서명전 및 선전전을 하였다.그와 병행하여 영도구청도 방문하고 부산 시청 대중교통과도 방문하여 영도 지역의 상황을 설명하고 2009년에는 반드시 영도에도 저상버스가 투입 운행 되어야 함을 강력히 건의 하였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올해 3월 영도에도 저상버스가 운행을 시작하였다.2대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시발로 영도 전 노선에 나아가서는 부산 시내 전 노선에 저상버스가 운행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올해 사업으로는 영도 지역 내 공공시설(은행, 병원, 관공서 등등)의 접근성을 조사하여 개선하려고 한다.조사를 해 본 결과 은행 자동화기기에는 접근을 할 수 없는 구조인 경우가 많았다.계단이 많든지 혹은 한두 개가 있어 휠체어 장애인들은 이용할 수가 없다.그 외에는 장차법(장애인차별금지법) 강의 및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 등이 있다.

끝으로 박병주씨는 “센터가 추구하는 일들이 목적한 대로 성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아직 설립된 지가 얼마 안 돼 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점점 체계도 잡히고 어느 정도의 규모도 갖추어서(센터 사무실이 없음) 센터 일을 더욱 원활하게 하여 많은 장애인,특히 영도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자신의 일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4월 4일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가 진행되었다.이날 참여한 블로거는 모두 8명이다.부산에서 6명,경남 1명,서울 1명 이였다.이날 모임 장소는 부산지하철 2호선 서면역이였다.

4월 4일 토요일 10시 서면역 회의실에서 사전 모임이 있었다.이날 행사참가자는 모두 23명이였다.행사진행 3명,영상 및 사진 2명,장애인이동권연대 4명,부산지하철노동조합역무지부6명,블로거 8명이였다.

사전모임은 남원철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A4 4장 분량의 블로그 취재 계획서를 모든 행사참가자에게 배부하면서 이날의 일정 등을 소개하였다.

이날 행사는 총 4팀으로 진행되었다.1팀은 장애인 김주필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김주완,엔시스 블로그가 참가했고,2팀은 장애인 김진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한글로,세미예 블로그가 참가했고,3팀은 장애인 박병주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정철상,부사니스 블로그가 참가했고,4팀은 장애인 정선옥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거다란,스킨사이언스 블로그가 참여했다.4팀은 시청자미디어 센터에서 영상촬영팀도 참여를 했다.

장애인 박병주씨(42)를 취재하기 위하여 3팀은 그의 집이 있는 영도구 남향동 까지 남원철 교육선전부장의 승용차를 이동했다.남향동에 있는 박병주씨의 집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그는 밝은 표정으로 참가자들을 맞이해주었다.잠깐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장 그의 집에서 나와서 남향동 버스역으로 향했다.그는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에 목발을 한 채 힘겹게 올라 탔다.버스 문턱이 높기 때문에 박병주씨 같은 장애인은 일반버스를 이용할 때 마다 힘들다.

버스가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 근처에 하차 하였고,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지하도로 내려갔다.지하도는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박병주씨 같은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그는 목발을 한 상태로 힘겹게 계단을 한 발자국씩 내려오면서 “지하철 이용시 가장 큰 어려운 점은 지하에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기에 지하철이기도 하겠지만,예전의 전철처럼 지상으로 다니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은 덜 할 것도 같은데 가장 큰 불편은 역시 많은 계단의 연속입니다.지하철을 승차하려면 못 해도 3,4층 높이의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한 연후라야 탑승이 가능하니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몇 몇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가 되어 있지만 대다수의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실정이어서 당분간은 이 같은 수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하루 속히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수월하게 지하철을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라고 말했다.

박병주씨가 목발을 사용하여 천천히 힘들게 계단을 내려왔을 때 남포동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지하도에 많은 상가가 있었다.

박병주씨는 어느 상업시설을 가리키면서 “예전에는 분명히 의자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상업시설이 들어섰습니다.언제부터인지 지하도내에 의자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힘들게 계단을 내려와 잠시 앉아 쉬었다 가려고 마땅한 곳을 찾아 봐도 의자가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예전에는 분명히 의자가 있었던 곳인데 기계가 설치되었든지 아니면 상업 시설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쉴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합니다.의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별로 크지가 않은데 왜 의자를 치워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힘들게 지하도 계단을 내려와서 좀 쉬려고 해도 쉴만한 장소가 없다고 하소연 했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던 박병주씨는 물을 내리지 않고 그냥 나왔다.화장실 물을 안 내리고 왔다고 조용하게 귓속말로 알려주고 이유를 질문하자 “화장실의 경우는 바닥이 너무 미끄러운 재질의 타일로 깔려 있습니다.예전에 화장실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습니다.그냥 타일도 미끄러운데 물청소까지 해 놓으면 목발을 짚은 저 같은 경우는 빙판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위험합니다.미끄럼이 덜한 타일도 있을 텐데 굳이 그렇게 얼음 같은 타일을 깔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장애인들에게는 낙상의 위험이 상당합니다.남포동 장애인 화장실의 경우에는 물을 내리는 버튼이 변기 뒤쪽에 하나 밖에 없어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리기가 불편합니다.다른 역의 장애인 화장실에는 바닥과 옆 벽면에 버튼이 부착이 되어 있어 용변 후에 물을 내리기가 용이합니다.원래는 그렇게 해야 맞는데 지하철 역내의 장애인화장실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몇 있는 걸로 압니다.작은 경우라면 작은 경우라 할 수 있지만 볼일을 보고서 물을 못 내리면 맘이 조금 찜찜하고 무리하게 뒤쪽 버튼을 누르려다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시급히 개선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고 말했다.박병주씨는 장애인 화장실의 물 내리는 버튼이 변기 뒤쪽에 붙어 있어서 목발을 한 상태로 도저히 물을 내릴 수 없어 포기를 하고 나온 것이다.

박병주씨(42)는 힘겹게 지하철 1호선에 탑승했다.그는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가 넓은 역이 많이 있어서 목발 짚은 장애인들은 그 틈새로 목발이 빠질 위험이 높다고 말하면서 승강장과 지하철 턱이 수평이 되지 못 하고 지하철 턱이 높아 그 턱에 걸려 넘어져 목발을 부러트린 일이 있었다면서 지난 일을 회상했다.

박병주씨가 탑승한 지하철은 부산지하철 남포동역에서 출발하여 서면역을 향하고 있었다.서면역에 도착하여 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서 지하철 1호선에서 내리는 순간 정말 이해가 안되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거 밖에 표시가 안되어 있었다.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 지하층으로 한층을 더 내려가야 하는 구조였지만 엘리베이터는 내려가지를 않았다.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조금 내려오고 난 이후에 비로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박병주씨는 이 정도의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체념하면서 더 이상 이상한 엘리베이터에 대해선 언급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하여 워낙 불편한 점이 많다보니 이 정도는 큰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거 같았다.



부산지하철공사 노조원들과 블로거들은 4월 4일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에 참가하여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에 불편한 점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장애인들의 불편한 점들은 빠른 시간 안에 개선되어야 한다.일단 현실적으로 작은 예산으로 노조원들이 조금만 고생하면 빠른 시간 안에 불편한 점들을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부산지하철공사 노동조합에서 장애인들을 초대하여 직접 동행하면서 불편한 점을 체험했던 ‘행사’가 장애인들을 이용하려고 한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간중심이라는 부산지하철노조의 이념에 맞게 추후에 많은 예산을 들여서 이번에 발견되었던 불편한 점을 개선하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작은 예산으로도 바로 불편한 점을 시정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솔선수범하여 실천해보기를 간절하게 바란다.모든걸 떠나서 장애인들의 불편한 점을 노조원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여 먼저 개선해주어야 한다.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 부산시민들은 부산지하철노조를 신뢰하고,부산지하철노조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까닭

시사/취재 | 2009/02/27 21:08 | Posted by 부사니스

삼성에서 일본어를 강의하며 '한국'을 배우고 있는 코이즈미 카즈미를 만났다.

미국 오리곤에서 만나게 된 한국인 친구 '최유희'를 통해 한국을 사랑하게 된 카즈미.

일본어 여강사 코이즈미 카즈미 그녀가 일년 일개월 동안 몸으로 느낀 한국의 매력.

삼일절을 맞이하여 전세계의 블로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하여 삼성 일본어강사의 기사는 영문으로 옮긴다.
 

                                                        영문기사 보기

“모시,모시”

인터뷰 허락을 위한 전화제의에 도쿄 표준 억양으로 전화 받는 일본어 강사 코이즈미 카즈미의 첫마디였다.그녀를 만난곳은 부산 광안리 바닷가의 ‘WHO' 레스토랑이었다.그녀와의 인터뷰를 위해 레스토랑이 만들어졌다나?

노블한 분위기가 나는 금색 블라우스, 검은색 스커트 그리고 현대 여성의 이미지를 풍기는 짧은 헤어 스타일,하얗게 메이크업한 바탕의 빨간색 장밋빛 입술 코디네이션은 일본 잡지 어느 구석엔가 본듯한 패션 모델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지난해 2월 내한한 카즈미, 그녀의 이름은 한자로 ‘화미(和美)’ 이고 이름의 뜻에서 느끼듯이 호감을 주는 아가씨다.처음 6달 동안 한국에 적응하느라 무척 고생이 많았지만 그 후로는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식사다.


아침 일찍 시작되는 수업 일정과 저녁 늦게 끝나는 수업 일정 때문에 아침은 거의 못 먹고 저녁도 귀찮아서 안 먹을 때가 많다.

“최유희라는

한국친구를 만났어요”

새로운 세상 접하기를 좋아하는 카즈미는 4년 전 미국 오리곤주로 건너가 공부하던 시절 ‘최유희’ 라는 한국 친구를 만났다.몇 안 되는 아시아계 사람이라 왠지 친근감이 갔다.

공부 때문에 무척이나 바쁜 시간 속에서 맞은 여름방학때 유희는 비버톤(Beaverton)에 있는 자기 사촌집에 놀러 오라고 했고 유희가 적어준 지도를 보고 비버톤(Beaverton)을 찾아갔으나 약속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다.

“난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그리고 처음 오는 낯선 길이라 늦게 온 것 이해해”

그 때 유희는 진짜 그녀의 친구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따뜻한 마음과 넓은 이해심을 낳은 나라 한국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그녀는 서점에 가서 한국에 관한 자료를 찾았으나 그 서점에는 여행안내 책자밖에 없었다.

그녀의 한국책 찾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그녀는 고서가 도서관 등을 다니면서 많은 책을 읽었고 한국에 대한 지식이나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한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 같은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 역할을 할래요“

한국을 알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심 한 카즈미는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의 일본에 대한 ‘분개심’을 알게 되었다.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깊게 상처를 받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삼성에서 한일 간의 관계를 주제로 자유토론 중 한 여직원이 눈물을 흘리며 일본에 대해 유감을 표현했을 때 카즈미는 크게 당황했다.일본인으로서 정말 부끄럽다는 수치심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일본 정부는 교과서의 역사부터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한국에 대한 ‘사죄’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한국에 산 지도 일년하고 한 달이 지났다.한국어는 못하지만 주말에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을 몸으로 체험했다.

“한복은 볼 때마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요.한번 입고 거리를 돌아 다니고 싶어요.”

그녀가 본 곳 중 가장 매력있는 곳은 한국 민속촌이며 한국의 소리 국악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단다.설날 때 한국의 친구와 윷놀이를 한 기억이난다.그녀는 한국 고유의 것들이 다 독특한 멋과 향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일본에 비해 ‘정’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한국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한국인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너무나 근본이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다.

한국을 사랑하기에 괜찮은 한국남자가 나타나면 결혼도 좋다는 카즈미는 이제 몇일 후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한국,한국의 매력을 일본인에게 알릴 것입니다.비록 나의 능력은 적지만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Mosi,Mosi"

Was the first thing kazumi, a japaese teacher in Samsung,said as she answered the phone with a standard Tokyo accent,asking for an inetview.The meeting place with her was a restaurant,'WHO',at Gangan beach in Busan.Does this imply that it was built for the interview with her?

Rosy lips by making herself up and wearing a golden blouse displaying a noble mood, and a black shirt and short hair showing the contemporary woman's image,which give the feeling that they were like those of fashion model in the corner of japanese magazine.  

kazumi,whose first name is 和美(Hwa-Mi) in chinese,came to Korea in February last years and was as smooth as her name suggested.She had great difficulty in adjusting to korea for the first 6 months,but after that she could travel around freely,with her worst problem meals.  


Having her class schedule starting in the early morning and finishing in the afternoon,she almost did not have dinner.

"I met a Korean friend named Choi Yoo Hee"

Going to study at Oregon State, Kazumi who likes to undergo new worlds,met a korean friend named Choi Yoo Hee.They attracted each other because there were fer Asians on campus.

Yoo Hee told Kazumi that she could visit her cousin's house in Beaverton as the summer vacation came in her busy schedule of study.

Being aided by the map Yoo Hee had drawn,she went to Beaverton,but she arrived there much later than the appointment time

"I have confided in you to come here and I can comprehend you reached here too late because it was unfamailiar and your first coming this way" 

Hearing Yoo Hee's saying,she felt with all her heart Yoo Hee was a true friend, and indulged herself in the thought to like to know Korea producing a comprehensive and warm mind.So she went to book store to find material concerning Korea but there were only travel guiding books.

From that time she began finding books on Korea.She had been to old book houses and libraries,read a lot of books and became aware of her lacking knowledge and awareness about Korea.

It did not take a long time before she realized the fact that most Japanese have an abomination and discrimination toward Korea,Korean and she came to have an idea that through this realization she was as much a disgrace as those Japanese.

"I will play the role of small brige connecting Korea and Japan"

Kazumi had decided to visit Korea in person to see it,came to know the indignation of Korea against Japan with teaching Japanese in Korea.

"Most Koreans were hurt more than I had guessed" said Kazumi.As several staft at Samsung talked freely about the relation between Korea and Japan,one of woman staffs expressed bad emotion in a fury,weeping bitter tears which perplexed her,who was quiet at a loss with real shame as the same Japanese.   

"I think that Japanese goverment teach correctly history in school is the true way of apology."

A year and month has passed since she came here.She traveled and learned about Korea by direct and actual experiences,even though she could not speak Korean.

"Whenever I look at a Hanbok,the thought that a Hanbok is very beautiful occurs,I'd like to wear a Hanbok and go out"

She said that the best charming place among which she had visited was Korea Traditional Village,the sound of Korea,'Kugak' always make her restful and she remembers playing 'Yooch' with koreans on new year,she thinks Koreans traditional things have a special way of attracting and are fragrant.

She thinks the place where people having more affection-we call it 'Jeong' live together is Korea and she became acquainted with many Koreans,who were basically good and moderate.

Kazumi who thinks it is possible to get married if a nice Korean man will appear,will go back to Japan a few days later."I'll make Japanese acquainted with Korea and the charm of Korean culture,having little ability I'll play the role of a small bridge connecting Korea and Japan."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