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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5일 <KBS8 뉴스타임>에서 ‘서거 3일째…봉하마을 끝없는 추모 행렬’이라는 기사가 보도가 되었다.

뉴스 앵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김해 봉하마을에는 밤늦게까지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현장에 나가있는 취재기자 연결합니다.”라는 멘트를 넣으면서 생생한 뉴스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앵커의 멘트를 이어 받은 현장에 있던 기자가 화면에 등장하여 직접 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했다.방송 화면에서는 뉴스를 전달하는 기자 뒤로 봉화 마을과 많은 조문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는 매우 진지한 모습으로 추모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현장의 소식을 전한 뒤 매우 충격적으로 “오늘은 평일이지만, 전국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라는 뉴스를 전달했다.이것은 기자의 개인 멘트가 아니라 현장을 취재하여 보도되고 있는 기사 였다.

이 뉴스를 본 ‘jhmovie2’ 라는 아이디를 가진 시청자는 노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너무나 슬퍼 울면서 아이와 함께 뉴스를 시청했는데 ‘관람객’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인 자신의 아이가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구경 가는 거냐고..” 했다고 하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시청자들은 ‘관람객’ 이라는 표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공영방송이 왜 이렇게 되었나며 안타까워했다.

관람(觀覽) 이란 연극, 영화, 운동 경기, 미술품 따위를 구경한다는 의미이다.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하여 갔던 사람들을 관람객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실수를 한 것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기사나 글을 쓰다 보면 오타나 적절하지 못한 단어와 어휘를 선택할 수 있다.하지만 이번 기사를 분석해 보면 의도적으로 ‘관람객’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여 매우 심각하다.

2009년 5월 25일 <KBS8 뉴스타임> ‘서거 3일째 봉하마을 끝없는 추모 행렬’기사 전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사흘째를 맞았지만, 추모의 열기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평일이지만, 전국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퇴근 시간이 지난 뒤 많은 직장인들이 봉하마을을 찾으면서 추모 행렬이 더 늘어나는 모습입니다.

조문객들은 `나로 말미암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없애겠다며 생을 마감한 고인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분향을 기다리고 있는 조문객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손수건을 적셨고 이젠 이승의 고통을 모두 잊은 듯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습니다.

조문객들은 분향소 주변 도로에 노란 리본을 달고 노 전 대통령에게 미처 다하지 못했던 말들을 남기며 슬픔을 삼켰습니다.

분향을 마친 조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최후를 맞은 부엉이 바위와 사저를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김해 봉하마을의 빈소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시대정신은 모든 추모객들의 마음 속 깊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한편, 경찰은 지난 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사저를 나서는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을 확인한 결과, 새벽 5시 50분에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 한 명과 함께 사저를 나섰고, 다른 특이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스 전문을 자세하게 읽고 분석을 해보면 분명하게 관람객과 조문객이라는 단어는 전체의 텍스트(TEXT)에서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이 기사를 쓴 글쓴이는 봉화마을에 조문을 목적으로 온 사람과 관람을 목적으로 온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러니까 관람객이라는 단어는 오타도 아니고 조문객이라는 단어 대신 잘못 선택하여 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봉화마을에 온 많은 사람들을 크게 관람객과 조문객 2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상의 실수도 아니고 서로 다른 이념이나 사상에서 비롯된 철학 때문도 아니다.기자 한 사람의 실수라기 보다는 뉴스 제작진의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시청자들은 고인과 시청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관람객 이라는 표현이 보수 정치 세력들의 의도적인 고인에 대한 반달리즘은 아니지 않는가?아무리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반대되는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고인이 된 분에게 이런 상식 이하의 언론 플레이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믿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KBS 뉴스 제작진의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라고 간주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노대통령이 서거하자 봉화마을에 파견된 KBS 취재단과 기자는 마을 주민들의 환영은 커녕 박대를 받아 취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반면에 블로그들은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 내부에 마련된 곳에서 편하게 취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KBS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이 기사가 있는 홈페이지에 관람객을 조문객으로 ‘바로잡습니다’라고 하여 표현하면서 게시판을 통하여 사과를 한 것은 잘 한일이라 생각한다.

안 그래도 진보 세력들에게 미움을 받는 KBS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은 스스로 목에 돌을 메고 강물로 뛰어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위를 한 것이다.

이념과 사상을 뛰어 넘어 고인이 편하게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조용하게 고인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온 국민이 가질 수 있도록 KBS에서 최선을 다하여 배려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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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20 올림픽유치범시민지원협의회 http://www.2020busan.org/)

부산 2020년 올림픽의 걸림돌은 국내와 국외에 2가지가 존재 한다.국내의 걸림돌은 평창 동계 올림픽이고,국외의 걸림돌은 2016년 일본의 하계 올림픽 개최이다.

23일 열린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총회에서 평창의 동계올림픽 3수가 사실상 결정 되었다.부산으로서는 국내의 걸림돌을 제거 하지 못한 경우가 된것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결정되면 사실상 2020년 부산 올림픽은 불가능 해진다.하지만 부산 2020년 올림픽은 좌초된 것이 아니다.평창이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이 되지 못하면 부산 2020년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다.

도쿄가 2016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면 부산의 2020년 올림픽은 불가능 해진다.만약 도쿄가 2016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하면 부산 2020년 올림픽 개최가 유력해진다.

국내에서 평창은 기회를 3번이나 주고 부산은 한번도 제대로 된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 불만이다.2020년 부산 올림픽의 꿈은 아직 무산 된것이 아니다.부산은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충분하다.부산이 올림픽을 유치하여 한걸음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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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프레타포르테 부산이 개최되다

시사/사회 | 2009/04/21 01:07 | Posted by 부사니스
한국 유일의 세계적 패션쇼 프레타포르테 부산이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개최 됩니다.
 
아시아 패션문화의 중심지 한국의 부산에서 국제적인 컬렉션인 프레타 포르테 부산 2009/10 FW 컬렉션(Prêt-à-Porter Busan  2009/10 FW Collection)이 열린다. 

행사 장소는 해운대 벡스코(Bexco)이며 프로테 포르테 부산의 홈페이지 주소와 전화번호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papbusan.com/

051)740-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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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의 1편은 <무용지물 장애인 화장실과 이상한 엘리베이터>라는 제목으로 지난 4월 7일에 포스팅 하였다.1편은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 역사에서 지하철을 탑승하여 부산지하철 2호선 서면역에서 환승하기 까지 장애인 박병주씨와 동행하면서 직접 체험하고 취재한 것을 포스팅 하였다.

부산지하철 2호선 서면역에서 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까지 가는 도중 식사를 하기 위하여 3팀은 대연역에서 갑자기 하차를 결정했다.대연연 근처에 맛있다고 소문이 난 돼지국밥집이 있기 때문이다.너무 맛이 좋아서 언제나 식당 밖에 길게 줄을 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다.줄을 길게 서 있을 것으로 예측이 되었지만 3팀은 소문난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더 앞서 과감하게 대연역에서 하차를 결정했다.대연역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굉장히 높아 보이는 계단이 보였다.조금만 돌아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도 있었지만 박병주씨는 3팀 일행을 배려하여 그냥 올라가자고 했다.

대연역 하차는 원래 일정에 없었던 일이였는데 점심 식사 때문에 갑자기 결정된 일이였다. 박병주씨는 뜻밖에도 이날 전혀 예정되어 있지 않은 대연역에서 계단을 올라가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장 힘들어 했다.이날 일정 중 가장 가파르고 긴 계단을 목발만 짚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점심 식사를 끝내고 3팀은 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 방문했다.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는 고층 오피스텔에 입주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하층에서 부터 엘리베이터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박병주씨는 계단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너무나 편하게 센터를 방문했다.엘리베이터가 장애인에게는 엄청나게 의미 있는 존재이다.

이날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의 일정대로 함세상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하였다.부산지하철노조 사무실에서의 평가회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3팀의 이날 행사 마지막 일정이였다.

이곳에서 부산장애인이동권연대 제청란 사무국장을 만났다.개량한복을 차려입고 3팀 일행을 따뜻하게 영접해 주었다.장애인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 또 한명의 장애인이 센터에 있었다.이날 우리와 동행했던 박병주씨의 여자 친구였다.제청란 사무국장은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두 사람은 손을 꼭잡고 있을 정도로 사이가 애틋하다고 했다.

박병주씨(42)는 영도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의 조직 부장이다.센터가 처음 문을 연 것은 2007년 8월이였다.자립생활센터의 주요 목적은 장애인들이(특히 중증장애인) 지역 내에서 살아가는데 미력하나마 힘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돌보아주는 가족이 없으면(돌봐주는 가족이 있어도) 결국은 장애인 수용 시설로 가는게 다반사이다.하지만 많은 장애인들은 시설 생활을 상당히 꺼려하거나 혐오한다.집단 속에서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자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와 본능이기 때문이다.

자립생활센터는 이러한 장애인들의 욕구인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이나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영도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장애인들이 살고 있고,이 장애인 대부분이 수급권자인 경우가 많다.수급권자에게는 임대 아파트가 주어지는데 영도에는 동삼동에 몰려 있다.게다가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의 장애인들이 시내로 행차를 하려면 마땅한 교통수단이 부재한 실정이다.일반 버스를 타기는 아예 그림의 떡이고 택시에는 휠체어를 실을 수가 없고 그나마 장애인 택시인 두리발이 있지만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하지만 휠체어 장애인들도 아무런 어려움이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있는데 바로 ‘장애인저상버스’가 그 주인공이다.승하차시에 경사판이 내려옴으로 휠체어를 타고서도 타인의 도움 없이 수월하게 승하차 할 수 있다.실제로 부산 시내버스 노선에 투입이 되어 운행 중에 있지만 그 댓수가 아주 미미하기에 부산에 퍼져 있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영도센터는 이 장애인저상버스를 영도에 도입 운행하는 것을 첫 사업으로 삼았다.지난 1년간 매월 한 번씩 영도센터 주체로 다른 단체들과 협력하여 영도에서 인파와 차량의 통행이 잦은 곳에서 서명전 및 선전전을 하였다.그와 병행하여 영도구청도 방문하고 부산 시청 대중교통과도 방문하여 영도 지역의 상황을 설명하고 2009년에는 반드시 영도에도 저상버스가 투입 운행 되어야 함을 강력히 건의 하였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올해 3월 영도에도 저상버스가 운행을 시작하였다.2대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시발로 영도 전 노선에 나아가서는 부산 시내 전 노선에 저상버스가 운행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올해 사업으로는 영도 지역 내 공공시설(은행, 병원, 관공서 등등)의 접근성을 조사하여 개선하려고 한다.조사를 해 본 결과 은행 자동화기기에는 접근을 할 수 없는 구조인 경우가 많았다.계단이 많든지 혹은 한두 개가 있어 휠체어 장애인들은 이용할 수가 없다.그 외에는 장차법(장애인차별금지법) 강의 및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 등이 있다.

끝으로 박병주씨는 “센터가 추구하는 일들이 목적한 대로 성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아직 설립된 지가 얼마 안 돼 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점점 체계도 잡히고 어느 정도의 규모도 갖추어서(센터 사무실이 없음) 센터 일을 더욱 원활하게 하여 많은 장애인,특히 영도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자신의 일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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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가 진행되었다.이날 참여한 블로거는 모두 8명이다.부산에서 6명,경남 1명,서울 1명 이였다.이날 모임 장소는 부산지하철 2호선 서면역이였다.

4월 4일 토요일 10시 서면역 회의실에서 사전 모임이 있었다.이날 행사참가자는 모두 23명이였다.행사진행 3명,영상 및 사진 2명,장애인이동권연대 4명,부산지하철노동조합역무지부6명,블로거 8명이였다.

사전모임은 남원철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A4 4장 분량의 블로그 취재 계획서를 모든 행사참가자에게 배부하면서 이날의 일정 등을 소개하였다.

이날 행사는 총 4팀으로 진행되었다.1팀은 장애인 김주필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김주완,엔시스 블로그가 참가했고,2팀은 장애인 김진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한글로,세미예 블로그가 참가했고,3팀은 장애인 박병주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정철상,부사니스 블로그가 참가했고,4팀은 장애인 정선옥씨를 취재하기 위하여 거다란,스킨사이언스 블로그가 참여했다.4팀은 시청자미디어 센터에서 영상촬영팀도 참여를 했다.

장애인 박병주씨(42)를 취재하기 위하여 3팀은 그의 집이 있는 영도구 남향동 까지 남원철 교육선전부장의 승용차를 이동했다.남향동에 있는 박병주씨의 집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그는 밝은 표정으로 참가자들을 맞이해주었다.잠깐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장 그의 집에서 나와서 남향동 버스역으로 향했다.그는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에 목발을 한 채 힘겹게 올라 탔다.버스 문턱이 높기 때문에 박병주씨 같은 장애인은 일반버스를 이용할 때 마다 힘들다.

버스가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 근처에 하차 하였고,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지하도로 내려갔다.지하도는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박병주씨 같은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그는 목발을 한 상태로 힘겹게 계단을 한 발자국씩 내려오면서 “지하철 이용시 가장 큰 어려운 점은 지하에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기에 지하철이기도 하겠지만,예전의 전철처럼 지상으로 다니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은 덜 할 것도 같은데 가장 큰 불편은 역시 많은 계단의 연속입니다.지하철을 승차하려면 못 해도 3,4층 높이의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한 연후라야 탑승이 가능하니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몇 몇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가 되어 있지만 대다수의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실정이어서 당분간은 이 같은 수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하루 속히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수월하게 지하철을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라고 말했다.

박병주씨가 목발을 사용하여 천천히 힘들게 계단을 내려왔을 때 남포동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지하도에 많은 상가가 있었다.

박병주씨는 어느 상업시설을 가리키면서 “예전에는 분명히 의자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상업시설이 들어섰습니다.언제부터인지 지하도내에 의자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힘들게 계단을 내려와 잠시 앉아 쉬었다 가려고 마땅한 곳을 찾아 봐도 의자가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예전에는 분명히 의자가 있었던 곳인데 기계가 설치되었든지 아니면 상업 시설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쉴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합니다.의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별로 크지가 않은데 왜 의자를 치워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힘들게 지하도 계단을 내려와서 좀 쉬려고 해도 쉴만한 장소가 없다고 하소연 했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던 박병주씨는 물을 내리지 않고 그냥 나왔다.화장실 물을 안 내리고 왔다고 조용하게 귓속말로 알려주고 이유를 질문하자 “화장실의 경우는 바닥이 너무 미끄러운 재질의 타일로 깔려 있습니다.예전에 화장실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습니다.그냥 타일도 미끄러운데 물청소까지 해 놓으면 목발을 짚은 저 같은 경우는 빙판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위험합니다.미끄럼이 덜한 타일도 있을 텐데 굳이 그렇게 얼음 같은 타일을 깔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장애인들에게는 낙상의 위험이 상당합니다.남포동 장애인 화장실의 경우에는 물을 내리는 버튼이 변기 뒤쪽에 하나 밖에 없어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리기가 불편합니다.다른 역의 장애인 화장실에는 바닥과 옆 벽면에 버튼이 부착이 되어 있어 용변 후에 물을 내리기가 용이합니다.원래는 그렇게 해야 맞는데 지하철 역내의 장애인화장실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몇 있는 걸로 압니다.작은 경우라면 작은 경우라 할 수 있지만 볼일을 보고서 물을 못 내리면 맘이 조금 찜찜하고 무리하게 뒤쪽 버튼을 누르려다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시급히 개선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고 말했다.박병주씨는 장애인 화장실의 물 내리는 버튼이 변기 뒤쪽에 붙어 있어서 목발을 한 상태로 도저히 물을 내릴 수 없어 포기를 하고 나온 것이다.

박병주씨(42)는 힘겹게 지하철 1호선에 탑승했다.그는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가 넓은 역이 많이 있어서 목발 짚은 장애인들은 그 틈새로 목발이 빠질 위험이 높다고 말하면서 승강장과 지하철 턱이 수평이 되지 못 하고 지하철 턱이 높아 그 턱에 걸려 넘어져 목발을 부러트린 일이 있었다면서 지난 일을 회상했다.

박병주씨가 탑승한 지하철은 부산지하철 남포동역에서 출발하여 서면역을 향하고 있었다.서면역에 도착하여 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서 지하철 1호선에서 내리는 순간 정말 이해가 안되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거 밖에 표시가 안되어 있었다.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 지하층으로 한층을 더 내려가야 하는 구조였지만 엘리베이터는 내려가지를 않았다.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조금 내려오고 난 이후에 비로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박병주씨는 이 정도의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체념하면서 더 이상 이상한 엘리베이터에 대해선 언급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하여 워낙 불편한 점이 많다보니 이 정도는 큰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거 같았다.



부산지하철공사 노조원들과 블로거들은 4월 4일 부산지하철노조 <장애인 이동권 체험행사>에 참가하여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용에 불편한 점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장애인들의 불편한 점들은 빠른 시간 안에 개선되어야 한다.일단 현실적으로 작은 예산으로 노조원들이 조금만 고생하면 빠른 시간 안에 불편한 점들을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부산지하철공사 노동조합에서 장애인들을 초대하여 직접 동행하면서 불편한 점을 체험했던 ‘행사’가 장애인들을 이용하려고 한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간중심이라는 부산지하철노조의 이념에 맞게 추후에 많은 예산을 들여서 이번에 발견되었던 불편한 점을 개선하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작은 예산으로도 바로 불편한 점을 시정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솔선수범하여 실천해보기를 간절하게 바란다.모든걸 떠나서 장애인들의 불편한 점을 노조원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여 먼저 개선해주어야 한다.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 부산시민들은 부산지하철노조를 신뢰하고,부산지하철노조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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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7일 부산mbc에서 <경제활동인구, 부산*경남 줄고 울산은 늘어>라는 뉴스를 보도 했다.

이 뉴스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간추려서 표현해 보면 부산과 경남의 경제활동인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여 감소한 반면 울산의 경제활동인구는 증가했기 때문에 울산은 부산,경남에 비하여 경기 침체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자 말자 뭔가 잘못된 보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필자는 간단하게 메모를 하고 나서 다음날 통계청에 질의를 했다.평소에는 통계에 대한 질문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셨다.어떤 통계는 심지어 질문을 한달 이상 한적도 있었다.질문을 오랜 한다는 것은 그만큼 통계를 심도있게 깊이 분석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하지만 이 통계의 질문에 대해선 필자 스스로 분석해보라는 무성의한 답변을 받았다.한마디로 거절 당한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례적으로 부산지방통계청에 다시 질의를 했다.부산지방통계청은 최근에 부산울산지방통계청으로 통합이 되었다.부산,울산,경남 즉 동남권의 통계청으로 통합이 된것이다.예상외로 울산쪽 통계를 담당하는 직원이 직접 전화를 하여 친절하게 답변을 주셨다.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필자를 알고 있는거 같았고, 기자라고 호칭을 해주셨다.아마도 부산의 언론사와 부산 시청 등 공공기관에 소문이 퍼져서 필자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거 같다.

울산은 2009년 1월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전년대비 15세이상 인구 14천명, 경제활동인구 17천명(취업자 8천명, 실업자 9천명) 증가되었다.울산의 경제활동인구가 전년대비 증가했다는 부산 mbc의 뉴스는 사실이다.하지만 특정한 시점의 전년대비 경제활동인구가 증가했다고 하여 경기 침체 정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경제활동인구는 실업자를 포함하는 개념이고,실업자가 증가해도 경제활동인구는 증가한다.하지만 실업율은 경기가 안좋을 때 많이 증가한다. 

좀더 정밀하게 울산의 경제활동인구를 분석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 2000년~2008년 까지 최근의 울산 실업율은 2000년도에 4.2%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2008년에는 3.5%로 높은 실업율 수치를 기록했다.2006년 2.9%,2007년 2.6%의 실업율을 기록한 울산 역시 최근에 전국적으로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아 실업자가 급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2000년~2008년 까지 최근의 울산 실업율 보기)

2. 2008년 1월의 울산 실업율은 2.7%에 불과했지만,2009년 1월은 4.3%로 실업율이 급증 하고 있다.경제활동인구는 부산 mbc의 보도에 설명이 되어 있는 것처럼 실업자와 취업자 모두를 포함한다.그러므로 실업자가 증가해도 경제활동인구가 통계상으로 증가한다.울산 같은 경우 2008년 1월 기준으로 전년대비 경제활동인구의 증가는 실업율의 급증에 의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실업자가 급증한다는 것은 경기가 그만큼 침체되었거나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3. 2008년 1월~2009년 2월 까지의 울산의 월별 실업율을 분석해보면 2008년 10월부터 실업율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008년 10월 울산의 실업율은 4.2%,11월의 실업율은 4.5%,12월의 실업율은 4.6%,2009년 1월의 실업율은 4.3%로 주춤하는거 같았지만 2월의 실업율은 5.1% 기록하여 매우 높은 실업율을 기록하고 있다.근래에 울산의 실업율이 가장 높았던 2000년 실업율이 4.2%인 점을 감안하면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 까지의 실업율은 최고 수준임을 알 수 있고,이 수치는 울산도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경기에 따라 경제활동인구가 변동될 수는 있지만 경제활동인구만으로 경기를 판단할 수 없다.경제활동인구의 특정한 지표만으로 경기침체 영향 정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경기 상황을 파악하려면 특정 월을 한정하여 특정한 시점에서만 비교하기 보다는 여러 경제지표의 추이 등을 파악하여 분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울산의 경우 2009년 1월 전년비 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였다고 하여 울산이 경기침체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할 수 없다.

그 외에 울산은 산업도시의 특성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소폭 증가할 수도 있으며,부산지역 인구 감소 추세 등이 경제활동인구 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부산 울산 통계청의 답변을 첨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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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의 "부산은 노인 학대 상담이 시작된 2005년, 2006년엔 각각 1천264건, 1천769건을 기록해 서울 경기 광주 등에 이어 전국 3~4위권이었다. 그러다 2007년 3천249건으로 경기(5천641건)에 이어 2위를 차지하더니 올들어선 전국 최고의 '노인 학대 도시'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라는 보도 내용을 비판 하고자 한다.

상담건수가 많다고 하여 노인학대가 많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1편과 2편에서 설명을 했다.잘 기억이 안나시거나 처음 이글을 읽는 분들은 1편과 2편을 반드시 읽어 보시길 바란다.

그럼으로 부산이 상담건수가 많다는 이유로 노인 학대 도시의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억지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노인학대 1위' 부끄러운 부산(1)-엉터리뉴스 바로 잡기
'노인학대 1위' 부끄러운 부산(2)-엉터리뉴스 바로 잡기

노인학대 상담이 증가하는 이유는 노인보호전문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한 노인학대 인식 개선과 접근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http://cafe.naver.com/busanese/309)부산과 경기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노인전문기관이 2곳이나 설치되어 있는 지역이다.노인학대보호 시설 관련 인프라가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지역이 부산과 경기도라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당연하게 노인 상담횟수가 높은 것이다.

노인학대 신고 접수율은 낮은 수준인데 상담건수로 부산을 노인학대 도시 불명예 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마치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는데,피의자나 피해자가 진술을 한 횟수나 경찰이 조사를 하기 위하여 대화를 한 횟수를 범죄 수치 지표로 삼겠다는 행위와 똑같다.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로는 단 1% 도 이해가 안된다.

노인학대 신고 접수율 통계를 처음 접하시는 분 또는 기억이 잘 안나시는 분들은 1편을 다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부산시민의 애향심을 마져 철저하게 짓밟고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부산시민들은 부산일보가 부산의 신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조건을 따지지 않고 구독하고 있다.신고접수율이나 신고건수로 노인학대 불명예 도시라고 하면서 부산을 어떻게 해서라도 억지로 노인학대 불명예 오명을 덮어 씌울려고 하는 행위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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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 1위 부끄러운 부산>이라는 기사에는 ‘특히 부산의 경우 다른 시·도와 비교할 때 상담건수에 비해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사례는 적어 상당수 노인들이 학대 상담은 받으면서도 구제 조치는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상담건수와 신고의 개념이 거꾸로 잘못되어 있다.‘부산의 경우 상담건수에 비해 신고된 사례가 적다’는 것은 완전하게 잘못된 것이다.어떤 의미 있는 통계를 만들고 싶다면 ‘신고건수 대비 상담건수’를 산술해야 한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의 한 담당자는 “왜 이렇게 신문에 기사가 보도 되었는지 모르겠다.상담건수와 신고 개념이 잘못되었다”고 여러번 반복하면서 지적했다.상담을 먼저하고 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답답하고 참담한 마음을 표현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집계 되어있는 신고건수는 상담을 먼저 하고 나서 중대한 사안일 경우 신고를 하는 개념이 아니다.노인학대 신고는 접수의 개념과 동일하다.신고가 되면 그 다음 상담을 하게 된다.신고된 사건은 반드시 상담을 한다.신고된 한 사건은 여러번 상담하게 된다.한 사건에 대해서 상담횟수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상담횟수의 차이가 난다.예를들어 부산의 경우 신고건수가 100건이고,상담건수가 300건이라고 하면 신고 한건 당 상담을 평균 3번씩 한것이다.  

 '노인학대 1위' 부끄러운 부산(1)-엉터리뉴스 바로 잡기

상담횟수가 지역마다 다른 이유는 전국의 노인학대보호 시설의 인프라 차이와 업무가 표준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전국의 보호전문기관의 업무 스타일에 따라 상담 횟수가 차이가 나는데,직접 방문 상담 횟수가 차이가 있는게 가장 큰 원인이다.노인학대보호 시설 인프라가 가장 앞서 있는 부산과 경기도가 전국에서 가장 상담횟수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직접 방문 상담을 한다고 하여 신고 접수된 사건이 중대하거나 경미하지 않은 노인학대 사건이라고 할 수 없다.또한 한 사건을 여러 번 상담한다고 하여 그 상담횟수 만큼 사건이 중대하거나 심각하다고 할 수 없다.부산과 경기도는 노인학대 보호 시설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2군데 있기 때문에 이에 비례하여 방문 상담 할 수 있는 인력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방문 상담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고 전체 상담횟수도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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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까닭

시사/취재 | 2009/02/27 21:08 | Posted by 부사니스

삼성에서 일본어를 강의하며 '한국'을 배우고 있는 코이즈미 카즈미를 만났다.

미국 오리곤에서 만나게 된 한국인 친구 '최유희'를 통해 한국을 사랑하게 된 카즈미.

일본어 여강사 코이즈미 카즈미 그녀가 일년 일개월 동안 몸으로 느낀 한국의 매력.

삼일절을 맞이하여 전세계의 블로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하여 삼성 일본어강사의 기사는 영문으로 옮긴다.
 

                                                        영문기사 보기

“모시,모시”

인터뷰 허락을 위한 전화제의에 도쿄 표준 억양으로 전화 받는 일본어 강사 코이즈미 카즈미의 첫마디였다.그녀를 만난곳은 부산 광안리 바닷가의 ‘WHO' 레스토랑이었다.그녀와의 인터뷰를 위해 레스토랑이 만들어졌다나?

노블한 분위기가 나는 금색 블라우스, 검은색 스커트 그리고 현대 여성의 이미지를 풍기는 짧은 헤어 스타일,하얗게 메이크업한 바탕의 빨간색 장밋빛 입술 코디네이션은 일본 잡지 어느 구석엔가 본듯한 패션 모델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지난해 2월 내한한 카즈미, 그녀의 이름은 한자로 ‘화미(和美)’ 이고 이름의 뜻에서 느끼듯이 호감을 주는 아가씨다.처음 6달 동안 한국에 적응하느라 무척 고생이 많았지만 그 후로는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식사다.


아침 일찍 시작되는 수업 일정과 저녁 늦게 끝나는 수업 일정 때문에 아침은 거의 못 먹고 저녁도 귀찮아서 안 먹을 때가 많다.

“최유희라는

한국친구를 만났어요”

새로운 세상 접하기를 좋아하는 카즈미는 4년 전 미국 오리곤주로 건너가 공부하던 시절 ‘최유희’ 라는 한국 친구를 만났다.몇 안 되는 아시아계 사람이라 왠지 친근감이 갔다.

공부 때문에 무척이나 바쁜 시간 속에서 맞은 여름방학때 유희는 비버톤(Beaverton)에 있는 자기 사촌집에 놀러 오라고 했고 유희가 적어준 지도를 보고 비버톤(Beaverton)을 찾아갔으나 약속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다.

“난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그리고 처음 오는 낯선 길이라 늦게 온 것 이해해”

그 때 유희는 진짜 그녀의 친구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따뜻한 마음과 넓은 이해심을 낳은 나라 한국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그녀는 서점에 가서 한국에 관한 자료를 찾았으나 그 서점에는 여행안내 책자밖에 없었다.

그녀의 한국책 찾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그녀는 고서가 도서관 등을 다니면서 많은 책을 읽었고 한국에 대한 지식이나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한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 같은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 역할을 할래요“

한국을 알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심 한 카즈미는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의 일본에 대한 ‘분개심’을 알게 되었다.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깊게 상처를 받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삼성에서 한일 간의 관계를 주제로 자유토론 중 한 여직원이 눈물을 흘리며 일본에 대해 유감을 표현했을 때 카즈미는 크게 당황했다.일본인으로서 정말 부끄럽다는 수치심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일본 정부는 교과서의 역사부터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한국에 대한 ‘사죄’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한국에 산 지도 일년하고 한 달이 지났다.한국어는 못하지만 주말에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을 몸으로 체험했다.

“한복은 볼 때마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요.한번 입고 거리를 돌아 다니고 싶어요.”

그녀가 본 곳 중 가장 매력있는 곳은 한국 민속촌이며 한국의 소리 국악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단다.설날 때 한국의 친구와 윷놀이를 한 기억이난다.그녀는 한국 고유의 것들이 다 독특한 멋과 향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일본에 비해 ‘정’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한국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한국인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너무나 근본이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다.

한국을 사랑하기에 괜찮은 한국남자가 나타나면 결혼도 좋다는 카즈미는 이제 몇일 후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한국,한국의 매력을 일본인에게 알릴 것입니다.비록 나의 능력은 적지만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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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i,Mosi"

Was the first thing kazumi, a japaese teacher in Samsung,said as she answered the phone with a standard Tokyo accent,asking for an inetview.The meeting place with her was a restaurant,'WHO',at Gangan beach in Busan.Does this imply that it was built for the interview with her?

Rosy lips by making herself up and wearing a golden blouse displaying a noble mood, and a black shirt and short hair showing the contemporary woman's image,which give the feeling that they were like those of fashion model in the corner of japanese magazine.  

kazumi,whose first name is 和美(Hwa-Mi) in chinese,came to Korea in February last years and was as smooth as her name suggested.She had great difficulty in adjusting to korea for the first 6 months,but after that she could travel around freely,with her worst problem meals.  


Having her class schedule starting in the early morning and finishing in the afternoon,she almost did not have dinner.

"I met a Korean friend named Choi Yoo Hee"

Going to study at Oregon State, Kazumi who likes to undergo new worlds,met a korean friend named Choi Yoo Hee.They attracted each other because there were fer Asians on campus.

Yoo Hee told Kazumi that she could visit her cousin's house in Beaverton as the summer vacation came in her busy schedule of study.

Being aided by the map Yoo Hee had drawn,she went to Beaverton,but she arrived there much later than the appointment time

"I have confided in you to come here and I can comprehend you reached here too late because it was unfamailiar and your first coming this way" 

Hearing Yoo Hee's saying,she felt with all her heart Yoo Hee was a true friend, and indulged herself in the thought to like to know Korea producing a comprehensive and warm mind.So she went to book store to find material concerning Korea but there were only travel guiding books.

From that time she began finding books on Korea.She had been to old book houses and libraries,read a lot of books and became aware of her lacking knowledge and awareness about Korea.

It did not take a long time before she realized the fact that most Japanese have an abomination and discrimination toward Korea,Korean and she came to have an idea that through this realization she was as much a disgrace as those Japanese.

"I will play the role of small brige connecting Korea and Japan"

Kazumi had decided to visit Korea in person to see it,came to know the indignation of Korea against Japan with teaching Japanese in Korea.

"Most Koreans were hurt more than I had guessed" said Kazumi.As several staft at Samsung talked freely about the relation between Korea and Japan,one of woman staffs expressed bad emotion in a fury,weeping bitter tears which perplexed her,who was quiet at a loss with real shame as the same Japanese.   

"I think that Japanese goverment teach correctly history in school is the true way of apology."

A year and month has passed since she came here.She traveled and learned about Korea by direct and actual experiences,even though she could not speak Korean.

"Whenever I look at a Hanbok,the thought that a Hanbok is very beautiful occurs,I'd like to wear a Hanbok and go out"

She said that the best charming place among which she had visited was Korea Traditional Village,the sound of Korea,'Kugak' always make her restful and she remembers playing 'Yooch' with koreans on new year,she thinks Koreans traditional things have a special way of attracting and are fragrant.

She thinks the place where people having more affection-we call it 'Jeong' live together is Korea and she became acquainted with many Koreans,who were basically good and moderate.

Kazumi who thinks it is possible to get married if a nice Korean man will appear,will go back to Japan a few days later."I'll make Japanese acquainted with Korea and the charm of Korean culture,having little ability I'll play the role of a small bridge connecting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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