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콩트할 때 토크 코미디하고, 토크할 때 야외 촬영이라는 것을 시작한 이경규의 코미디는 항상 남보다 한발 앞선 진일보한 것이었다.70%가 넘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전설적인 예능 프로그램 <몰래카메라>는 국내 시청자들이 처음 보는 형식을 도입했고, <양심냉장고>는 MBC 공익 예능의 시초이자 절정을 이룬 프로그램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다.
<양심냉장고>는 IMF 시절에 한참 인기를 끌었는데 양심을 지키는 사람에게 냉장고를 상품으로 준 이유는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면 음식이 썩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썩지 않은 양심으로 충만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냉장고를 상품으로 걸었을 정도로 당시 한국 사회는 위기의 시대였다.단순히 경제위기였을 뿐 아니라 정신과 양심의 위기였다.
이경규는 시대 트렌드를 따라 가는 코미디언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트렌드가 되어 왔기에 한 코너가 끝나면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욱 힘들어 졌다.<이경규가 간다> 당시 선생님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스스로 이미지가 재미없게 변화는 것을 걱정한 이경규는 1998년부터 1년 동안 일본 유학 시절에 50대 코미디언이면서 여전히 정상권을 지키고 있었던 기타노 다케시를 롤모델로 삼아 귀국해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2000년대 이경규’로 변신을 한다.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의 시절에 전설적인 시청율로 이경규가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서 아직도 이때의 이미지로 판단하여 이경규는 혼자 하는 프로그램은 잘하는데 집단 MC나 리얼 버라이어티에는 약해 현재 최고의 전성기에 있는 유재석,강호동 등에게 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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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경규는 이미 버라이어티 <건강보감>의 집단 MC 체제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리얼 버리어티를 완성시킨 <무한도전>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스튜디오형 버라이어티 <대단한 도전>에서 ‘무달’이라는 별명과 이미지로 캐릭터를 구축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집단 리얼버라이어티에 캐릭터를 넣은 것도 최초였고,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꽁트 코미디에서 토크 코미디의 시대로 바꿔 놓은 주인공인 이경규는 지금보다 10년만 더 젊었더라도 요즘 한참 유행하는 야외에서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도 얼마든지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81년 제1회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인기상을 수상한 이경규는 사투리가 심해 토크 보다는 중국인 분장을 하여 슬랩스틱 코미디를 했지만 80년대 중반까지 꽁트 코미디가 강세를 보였던 시절이라 주목을 받지 못했다.하지만 MBC를 대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인기를 얻어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선배 코미디언 주병진과 함께 토크 코미디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토크 코미디를 자신만의 천부적이고 천재적인 코미디 감각과 입담으로 극복하여 코미디의 흐름을 바꿔 놓은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코미디 계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존재인 이경규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높은 시청율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것이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현역으로 활동하는 코미디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경규는 전성기 시절을 지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상업성이 소모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이후 일본에 유학을 가서 쉬면서 기타노 다케시를 롤모델로 삼을 정도로 이경규에게 변신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자신이 편하기 위하여 택한 변신이 아니라 새롭고 진보된 코미디의 개발과 인기가 절정에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후에 서서히 진행될 상업성의 소모에 능동적으로 대비하는 차원이었을 것이다.만약 이경규가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방송에서 퇴출당해야 했을지도 모른다.기타노 다케시를 롤모델로 하여 새롭게 변신한 이경규는 <건강보감>, <대단한 도전>, <느낌표>, <전파견문록>, <야!한밤에> 등을 성공시켰다.
국민MC 시절부터 발끈한 성격으로 개그를 하여 호통 개그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이경규를 비슷하게 따라한 경우가 많았는데 박명수가 가장 성공적으로 발전시켰다.최근 이경규는 한동안 독설과 호통개그를 유행시키며 독불장군 식으로 후배 개그맨들을 이끌며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1인자 이경규의 모습에서 한결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이윤석과 김국진 등에게 굴욕을 당하기도 하면서 전체 분위기의 완급을 조절하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변신된 모습을 <남자의 자격> 등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당당한 눈웃음의 비결 ♡
30년을 롱런한 사람으로 그 오랜 기간 동안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방송 출연한 것만 해도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는 이경규는 지금의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것만 해도 코미디 역사에 많은 발자취와 중요한 의미를 남길 수 있다.
강호동을 연예계에 입성시키고 정형돈을 자신이 진행하던 <대단한 도전>, <상상원정대>등에 출연시키며 '예능인'으로서의 성장을 도왔고 유세윤을 <불량아빠클럽>을 통해 MC로 발탁하여 버라이어티에서 활약을 하도록 도움을 준 이경규는 MBC에서 처음으로 <동고동락>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유재석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대표자인 강호동과 유재석은 <이경규가 간다>를 한참 촬영하던 시절이 이경규에게 최고의 시절이었던 것처럼 현재 인기 최정상에 있다.꽁트 코미디 시대에서 토크 코미디 시대로 흐름을 바꾸고 이를 버라이어티로 진화시키면서 끊임없는 변신을 거듭한 이경규 같은 코미디계의 상징적인 존재가 없었더라면 현시대를 대표하는 <무한도전>, <1박2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는 없었을 것이다.세월의 흐름을 거부하고 아직도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이 주어지면 <몰래카메라>처럼 최정상 자리에 언제라도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거 같은 이경규는 유재석 및 후배 코미디언들의 귀감이자 롤모델이 되어야 마땅하다.


